시, '어떤 부름'

조회 수 3129 추천 수 0 2018.07.18 04:55:08


어떤 부름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먼 곳>(문태준/창비/2012) 가운데서)



밥 먹자 건네는 어머니의 음성이

오래되었으나 견고한, 먼 우레와도 같은 성주의 부름 같다.

성주를 위해 대원정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부름,

결코 거역할 수 없고, 우리를 존재케 하는 오직 복종해야 하는,

그러나 한없는 사랑으로 나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말 이의 부름.

나는 작고 연약한 푸른 벌레 한 마리,

어머니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로 다 기어가서 닿고 싶은,

어머니 말씀의 온기의 그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온 힘 다해서 이르고픈 밥상으로 가는.

나도 오늘 그 밥상 앞에 앉고 싶다.

울 엄마의 김 오르는 밥 한 술 뜨면 

가뿐하게 병상을 차고 저 햇살 아래로 걸어나갈 수 있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물꼬를 다녀간 박상규님의 10일간의 기록 [5] 박상규 2003-12-23 153496
5644 숙제 :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오다. [1] 채은규경네 2004-04-22 924
5643 여그만치 글쓰기 어려운 곳도~ ㅎㅎㅎ 정예토맘 2004-08-11 924
5642 물꼬도 달았다! 위성인터넷! [4] 신상범 2004-09-05 924
5641 포도따는날-6 file 혜연아빠 2004-09-06 924
5640 잘들 계시죠? 김영진 2004-09-16 924
5639 매듭잔치 file [1] 도형빠 2004-12-27 924
5638 보고싶다...... [1] 나무꾼♧은정 2005-01-21 924
5637 상범샘 봐주세요! 이은경 2005-01-21 924
5636 2005년, 2006년 입학생 모집을 위한 2차 열음학교 설명회 개최 file 서영임 2005-07-20 924
5635 달골 포도즙은 계속 팝니다! 자유학교물꼬 2005-09-22 924
5634 10월 8일 벼벨 거래요 물꼬생태공동체 2005-10-08 924
5633 성수 맘 김용해 2006-01-23 924
5632 이제..아이들을 만납니다. 수현.현진 엄마 2006-08-05 924
5631 "물꼬이야기" 잘 받았습니다. 전은희 2006-11-30 924
5630 만날 날이 기다려지네요. [1] 이선옥 2008-07-30 924
5629 [답글] 그냥 왔어요~ 이서연 2008-09-21 924
5628 옥샘 [1] 윤정 2008-08-23 924
5627 물꼬 생각 [1] 조정선 2008-11-17 924
5626 [답글] 눈이 너무 많이 왔네? 조정선 2008-12-05 924
5625 겨울계자 [2] 주희맘 2008-12-07 9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