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 빵을 만들었다. 오늘은 모카빵.
버터를 먼저 녹이는 쿠키와 다르게 다른 재료들 섞은 뒤 버터를 섞는.
그리 만들어보니 알게 된 게 또 있더라.
빵 위에 토핑물을 얹은 것,
그게 갈라짐이 더 많아야(고르게 자잘자잘 금이 가야) 제대로 된 거더라고.
아, 당연하겠구나, 아래 빵과 위에 얹은 물이 익혀 팽창하는 정도가 다르니.
그러니까 아래는 빵이고, 위 덮개는 비스킷인.
1차 발효 45분, 2차 발효 30분(중간 발효도 15분),
발효시간이 기니 같이 밥도 해먹었다.
엄마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 일도 아닌.
뚝딱 해서 선걸음으로들 먹고나니 빵이 다 구워졌더라지.
한 어르신이 타일 바닥에 미끄러졌다.
살짝 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전 고관절 수술을 세 차례나 하셨더란다.
좀 쉬다 움직여보겠다셨는데,
한 남자 어른이 말했다.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가서 확인을 하고 댁으로 가는 게 맘 편치 않겠냐고.
아... 그럴 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서둘러 댁에 가서 쉬는 게 낫겠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기다렸다 태워다 드려야지 했는데.
119가 왔다.
골절이라 했고, 이삼 주 입원을 해얄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수가 없어서...”
“아니어요. 또 수술하실 수도 있는데 그만만 해서 다행이지요.”
나쁜 일은 언제든 일어난다.
늘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관건.
119를 부를 생각을 한 게 인상 깊었다. 배웠을세.
면소재지 농기계수리센터를 들리는 물날 오후라.
앉아서 미쯔비시 예취기 카뷰레이터(기화기)를 분해하고 조립하고 있었다.
마침 새 것으로 갈아끼우고 곁에 둔 게 있어서.
그때 등 뒤에서 누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같이 인사했다. 누군지도 모르고, 채 볼 생각도 않은 채.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등만 보였고.
그가 돌아섰을 때야 알았다. 오래 물꼬에서 일했던 이라.
반가웠고, 그제야 인사를.
“아까 못 보고 인사하셨구나...”
같이 고생했던 날들은 그런 거구나 싶더라.
혹여 불편할 수도 있을 것들이 껴있어도 반갑기가 먼저인.
고맙다, 나도 멀쩡하고 그대도 잘 살아주어.
점주샘이 왔다. 물꼬란 곳이 ‘그냥 놀러온다’가 없는 곳.
이번에도 우리는 일 하나 잡았다.
‘전에 장판 깔았으니 이제 도배 해야징:)’
얼마 전 보낸 문자였다.
장판은 6월 연어의 날 직전 햇발동 1,2층에 깔았던 장판을 말함이라.
하지만 도배는 거기 아니라 구두목골 작업실 C동.
‘오, 좋지!’
답이 흔쾌하게 왔고, 그렇게 도모한 일이었다.
저녁거리를 안고 현철샘도 건너왔다.
‘그래 도배하는데 장판 멤버가 모여야지!’
점주샘의 응답문자였더랬댔지.
하지만 현철샘이 그것까지 할 짬을 낸 건 아니고
마침 비 왔기 그곳 현장이 쉬어 점주샘 온다고 같이 모인.
좋은 사람들과 밥 한 끼 먹는 일, 사는 일이 이런 거다, 그런 생각.
비 내리는 고모령을 듣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2번을 듣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