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을 좀 잡아볼까?

지금부터 시월까지는

달에 한 차례씩 학교의 모든 곳과 달골의 모든 영역에 풀을 베고 민다.

손으로 풀을 매기로야 틈틈이, 거의 날을 거르지 않을 테고.

어제는 학교마당에, 오늘은 달골에들 모였다.

한 사람이 예취기를 메고 돌리기 시작하고

그 뒤를 따라 또 한 사람은 깎인 풀을 긁어모아 실어내고,

기계가 닿지 못하는 곳들은 또 다른 이가 손으로 매고 다니고.

낫으로 베거나 호미로 맨 풀을 삼태기에 모아버리다 보면,

손에 쥐고 쓰고 있는 도구는 그럴 일 잘 없지만,

일을 하다 농기구실까지 가지 않아도 되게 예비 도구까지 챙겨 내놓는데,

풀을 버리다 그만 그것들까지 버리는 일이 드물지만 생기기도 한다.

몇 해 전에는 풀더미에 선글라스를 벗어둔 걸 모르고 풀과 함께 버려

언덕 아래 가서 풀을 헤치고 찾아내 오기도.

오늘은 호미 한 자루가 그렇게 딸려갔다. 딸려갔나 보다.

못 찾았다. 이미 어둑해지고도 있었다.

일본에서 한 공동체 실험을 기록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공동체 이야기>

읽은 때로부터 족히 30년은 되었다 싶은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나는 대목이

공동체에서 아이들도 닭을 잡는 과정을 익히는 것과

풀섶 혹은 논두렁에서 일하던 이들이 제대로 챙기지 못한

호미 하나쯤 발견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신은, 날마다 차려야 할 일이다.

한순간 돌보지 않으면 천지로 달아나 버리는 마음 역시.

 

시작이다!

풀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 나라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존재들을 흔든 죄로

벌레들로부터 얼굴에 공격을 받고

퉁퉁 부어오르는 것으로 뜨거운 날이 시작되는.

팔다리 두어 곳 역시 역 벌겋게 부어올라야 

한 계절의 풀을 쓰러뜨릴 수 있다. 통과의례랄까.

오늘만 해도 이마 정중앙에 한바탕 물려 혹을 달았다.

오늘이여 다행하다고,

이쯤의 날이어야 주말 빈들 모임에서는 좀 가라앉지 않겠는가 안심하는.

밥바라지가 손이든 얼굴이든 벌컥 게 부어 있으면.

밥상에 같이 앉은 이들이 아무래도 마음이 자꾸 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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