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6.불날. 시원찮게 맑은

조회 수 1292 추천 수 0 2007.02.08 11:50:00

2007. 2. 6.불날. 시원찮게 맑은


부엌 아궁이 곁에
아이가 신는 겨울 슬리퍼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세워져 있었습니다.
어데서 또 젖었겠구나 생각했지요.
“엄마, 나 신발 빨았다!”
“그래?”
“너무 더러워서...”
“뭐로?”
“저 솔로.”
때가 되니 다 합니다.
저녁마다 양말을 빨아 불 때는 솥단지 위에도 잘 펼쳐놓지요.

시카고에 있는 아이 아비랑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요,
단식을 하면 사흘째가 힘이 드는데 마침 그날인데다
사택 전화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몇 차례나 반문하는 그를 마뜩잖아했지요.
“아빠가 좀 그렇잖아.”
등을 돌리고 책상에서 뭘 하던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제게 귓속말 그리 했지요.
그런데 돌아서서 제(자기) 할 일을 하며 그리 중얼거립니다.
“나는 좋은 마누라 얻어야지.”
이눔의 자슥, 말하는 본새 좀 보소...
안 무서운 마누라를 얻겠다?

아이가 밖에서 불렀습니다.
“오늘 뭘 발견했는지 알아?”
쾌종시계라고 흔히 부르기도 하는 커다란 벽시계를 뜯어낸 밑부분인데
작은 책장으로든 장식장으로든 쓸 수 있겠더라고
한 번 볼테냐고 들고 왔습니다.
아주 그럴 듯했지요.
“그런데, 앞에 이 턱은 잘라야겠다.”
“제가 톱질 할 게요.”
지금은 다른 일로 바빠 나중에 한다고 밀쳐두고는
또 오데로 사라졌지요.
저녁답에 부엌에서 인기척이 들려 내다보니
그 물건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 뗐네.”
“망치로 몇 번 두들기니 되데요.”
그리고 제(자기) 방에 들여놓습디다.

한 해 가장 한가로운 2월이나 되니
내 아이를 들여다보는 일도 잦습니다.
고맙지요.
풍요로운 그의 세계가 기쁨입니다.
어떤 부모가 그렇지 않을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306 2019.12.17.불날. 비 / 밥바라지, 오란 말인지 오지 말란 말인지 옥영경 2020-01-16 539
5305 2022.10.26.물날. 맑음 / 울진, 작가초청강연 갈무리글 옥영경 2022-11-12 539
5304 2023. 9.28.나무날. 해나왔다 흐려가다 옥영경 2023-10-07 539
5303 2020. 1. 6.달날. 비 옥영경 2020-01-20 540
5302 산마을 책방➁ 닫는 날, 2019. 8.25.해날. 맑음 옥영경 2019-10-10 541
5301 2020. 1. 5.해날. 맑음 / 계자 준비위 옥영경 2020-01-20 541
5300 2020. 1. 9.나무날. 해 옥영경 2020-01-20 541
5299 2020. 3.23.달날. 맑음 옥영경 2020-05-03 541
5298 166 계자 여는 날, 2020. 8. 9.해날. 저토록 맑은 하늘 / 완벽한 하루! 옥영경 2020-08-13 542
5297 2023.10.19.나무날. 밤 비 옥영경 2023-10-30 542
5296 2019.10. 1.불날.흐림 옥영경 2019-11-22 543
5295 2019.10. 7.달날. 비 옥영경 2019-11-25 543
5294 2020. 2.18.불날. 갬 옥영경 2020-03-18 543
5293 2023.11. 3.쇠날. 구름 걸린 하늘 옥영경 2023-11-12 543
5292 2023.11.15.물날. 맑음 옥영경 2023-11-25 543
5291 2023.11. 5.해날. 비 옥영경 2023-11-12 544
5290 2019. 9. 8.해날. 태풍 지났으나 비 옥영경 2019-10-23 545
5289 10월 물꼬스테이 닫는 날, 2019.10.20.해날. 맑음 / 아고라 잔디 30평을 심은 그 뒤! 옥영경 2019-12-05 545
5288 2020. 3. 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4-08 546
5287 2022. 5.23.달날. 맑음 / 설악산행 이틀째, 공룡능선 옥영경 2022-06-19 54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