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20.물날. 꾸물럭거리는

조회 수 955 추천 수 0 2009.06.06 01:54:00

2009. 5.20.물날. 꾸물럭거리는


아침, 드디어 쓰러졌습니다.
픽 넘어졌다는 말은 아니구요,
잠자리에서 못 일어난 게지요.
주말을 거의 쉬지 못한 채 세달 가까이 보내고 있었더니
잠시 여유로운 물날의 오전,
아이랑 해야 하는 공부시간을 밀치고
아주 구들더께 되었더랍니다.
느지막히 몸을 추스르고 마당에 내려섰는데,
아이가 불렀습니다.
“아,...”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간 가마솥방 중심 식탁에 파이접시 놓였는데,
파이 아래 돌단풍이 깔리고
위로는 토끼풀과 아카시아 꽃이 곱게도 장식되어 있었지요.
아침을 거른 어미를 위한 간단한 밥상이었습니다.
이래서 자식 키우나 싶더라니까요.

부엌에는 미선샘이 서울 올라가기 전 챙겨둔
아카시아, 뽕잎, 머위들이 바구니마다 그득그득했습니다.
효소단지를 채울 것들이지요.
몸을 좀 움직입니다.
식구들은 논에 가 있었지요.
논둑에 뽕나무도 베어내 버리고
한껏 자라난 풀도 베 내고
논에 거름도 뿌리지요.
아이도 논에 나가 거름 포대를 짊어지고
어른들을 도와 땀 뻘뻘 흘리며 일을 합니다.
잠시라도 식구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아이인지요.

무엇을 할 거라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이룰 거라는 것보다
생을 하루하루 어떻게 채워가는가가 더욱 중요하지요.
생각하고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
그거 하고 싶었고,
비로소 이 산골에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현재’입니다.
아카시아 꽃 다 흩날려 내리기 전
그것도 좀 더 따서 효소항아리 넣으려 옴작거립니다.

저녁답에는 대문 앞 풀들을 좀 잡았습니다.
쑥대머리 꼴이 따로 없는
대문 앞 화단이었지요.
들어서는 대문 안쪽 양 옆으로도
아니, 풀들이 언제 저리 키가 훌쩍 자랐답니까.
낫질 호미질을 좀 합니다.
다른 일을 하고 들어서든 식구들도 잠시 붙어서 같이들 했지요.
논일이며 바깥일 오가느라 금새 흙바닥이 된 부엌바닥도
주말까지 그 꼴 보지 못하고 닦아내기 시작했답니다.
개운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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