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2.물날. 맑음, 바람 많은 아침

조회 수 973 추천 수 0 2009.09.14 13:44:00

2009. 9. 2.물날. 맑음, 바람 많은 아침


정말 가을바람입디다,
바람의 면적이 다르고 두께가 다르던 걸요.
상쾌한, 딱 그 말로 시작한 아침이었습니다.

어제부터 가을 첫 버섯을 따내고 있습니다.
버섯 수확은 며칠 잠깐이지요.
봄가을로 세 차례 한 달 간격으로 댓날 따냅니다.
따기는 잘 따도
장마 끝이거나 오랜 우기 같은 비 가운데서
그간 썩혀버리는 게 더 많았던 버섯농입니다.
몇 차례의 실험 끝에
이제 말리는 것도 별 수 없이
전통적인 방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생으로 내면 최고일 것이나
보관에도 유통에도 건조에도
적은 양으로는 쉽지가 않았지요.
그렇다고 크게 하는 농사처럼
공판장에 나가 경매에 올리기도 적당치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몇 해의 버섯농은
이웃에 좋기로 소문이 나서
이번 달은 할머니들의 주문이 좀 있네요.
다른 곳보다 품질도 가격도 좋다십니다.
약 없이 한다는 버섯농조차
사실은 약을 치고 있단 걸 아시고는
그래도 물꼬 것들이 유기농으로 하고
그 유기농이란 게 잘은 몰라도 좋다는 건 너무 잘 아시지요.
곁에서 보시니까요.
맨날 맨날 다른 집에 견줘 굵지 못한 물꼬 논밭 것들이
안쓰럽고 안타깝고 그래서 안 볼 때 비료며 농약이든 뿌리겠노라시는 당신들,
정작 봄 오고 쑥 돋고 냉이 날 땐
죄 물꼬 논밭두렁에 앉아 계신답니다.
오늘 식구들이 열심히 따고 상자를 만들어
마을에 배달을 나가 돈사고 왔답니다.

여름 계자 일정 한 주 뒤부터
틈틈이 다녀간 아이들네와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부재했던 엿새를
물꼬가 알고 있는 까닭이지요.
다녀가고 몸살을 앓지는 않았나,
예서는 어찌 지냈는가,
그리고 글이나 말로 남기지 못한
그 아이들 마음에 남은 이야기들을 어른들로부터 듣는 시간입니다.
통화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넘어
어른들의 삶을 나누기까지 하다 보면
하룻저녁 할 수 있는 양은 겨우 두세 통에 그치고는 하지요.
그래도 가을 뒤덮기 전에야 끝이 나겠지요.

“엄마, 여기는(마을보다) 달빛이 더 밝지?”
달골에 오른 차에서 내리며
아이가 한참 하늘을 바라봅니다.
같이 좀 걸었습니다.
달빛내린 두멧길을 걷는 밤은
산마을이 주는 큰 즐거움 하나랍니다.
평화가 그런 결이겠다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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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물날. 더움. <*학교 가기 싫은 이유-일기검사>

애들은 다 일기를 제출해서 검사를 한다고 한다. 난 그게 정말 정말 싫다.
왜냐하면 내가 쭈욱 일기를 쭈욱, 잘, 제대로, 빠짐없이 써왔는데, 검사를 한다는 건 선생님이 날 못 믿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리고 검사를 맡으면 일기가 솔직해지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일기가 내 추억을 보관하는 상자가 되면 좋겠는데, 자꾸 검사를 받으면 그렇지 않아질 것 같다.
정말 왜 일기를 제출해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열두 살/류옥하다)

(* 제도학교에서 얼마동안 보내기로 한 첫 주,
아이는 아주 이 제목으로 일기를 시리즈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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