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5.흙날. 맑음

조회 수 849 추천 수 0 2009.09.14 13:46:00

2009. 9. 5.흙날. 맑음


배추 모종을 옮겨 심고
오줌거름을 뿌렸습니다.
지난 겨울 계자 아이들이 누고 간 오줌을
잘 발효시켰다가 준 것입니다.
올 여름 것들은 내년 봄농사에 쓰일 테지요.
“계자 해야 농사도 짓네.”
그러게 말입니다, 누군가의 농이었지요.

점심 준비를 용찬샘이 합니다.
종대샘이 실어다 놓은 냉면이며 육수 다대기가 있었지요.
가끔 소사아저씨와 용찬샘 둘만 있는 점심이면
하나씩 꺼내 드신다는 냉면입니다.
오늘 달골에 머물고 있던 희중샘네들도 내려와
같이 점심 밥상에 앉았더랬답니다.
좇아 들어가 무채무침을 해서 냈지요.
저녁에는 월남쌈을 먹었습니다.
호주에 있을 적 무지무지 먹어댔던 음식이지요.
꼭 거기 여름 날씨에 걸맞았던 음식,
이 여름이 끝나면 아쉬울 거라고
여름 끝자락을 쥐고 온 식구들이 푸지게도 먹었답니다.

오후엔 대해리 미용실 문을 열었지요.
오늘의 고객은 둘,
소사아저씨와 류옥하다입니다.
못해도 한 해 한 차례는
마을 어르신들 머리를 잘라드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통 짬을 내지 못하고
식구들 머리만 겨우 다듬는답니다.
가을 모기가 독합디다.
모기향 피우고 바람 좋은 교무실 뒤란 통로에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지난 여름 잠시 다녀갔던 이가
이곳에 지내면서 마음 편치 않았던 몇 가지를 들려줍니다.
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요, 뭐.
그런데 여전히 물꼬를 지지한다 하니
고마울 일입니다.
그런데 길어지는 통화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요새 저녁이면 계자를 다녀간 댁들과 통화가 길고,
때마침 전화가 울렸을 때
서둘러 처리해야할 일도 있었던 터라 더욱 그러했겠지만,
말이 도움이기도 하나
말이 악이 되기도 함을 알기 때문이었지요.
사람관계를 너무 말에 의존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천냥 빚도 갚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말이지만
말은 말이지요.
최근에 저는 말에 기대 관계를 푸는 방식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말을 써서 설득하는 방식에 회의적이며,
저 또한 말을 통해 별 설득이 되지 않고
상대 또한 그렇게 설득할 수 있다 생각지 않는 거지요.
‘자기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 설득’입니다.
말이 말을 밀고 가는 경향을 경계합니다.
우리 삶은 그 말에 있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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