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4.나무날. 안개 자욱했던 아침

조회 수 980 추천 수 0 2010.01.02 01:17:00

2009.12.24.나무날. 안개 자욱했던 아침


올 겨울 달골에서 주로 자고 있습니다.
아이랑 오르내리면서
더없이 좋은 시간을 엮고 있다지요.
학기가 돌아갈 땐 같은 공간에 있어도
밥 때 아니면 보기 어려울 정도인데
학기와 계자 사이 건너가는 이 시간들의 여유가
산길을 이리 걷도록 하고
그 길에서 아이랑 무수한 얘기들을 하게 합니다.
날마다 우리를 둘러싼 풍경들도 다르지요.
“엄마, 저것 좀 봐!”
“응?”
“배가 둥둥 떠가는 것 같지 않아?”
달산 곁의 산에
반달이 걸려 둥둥 떠가고 있데요.
이렇게 살고 싶었고, 바라던 대로 살고 있답니다.

오늘 아침은 짙은 안개가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번 학기 드나들었던 특수학급이 오늘 종업식이어
읍내를 가고 있었지요.
대해리를 나설 땐 그닥 짙지는 않았으나
읍내로 가는 신우재고개를 넘고 나니 발아래만 겨우 보였습니다.
조심조심 나아갔지요.
잠시 학급에 들어가 학기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한 학기 많이 얻었던 시간을 그리 정리하였답니다.

노근리 사진전이 영동도서관에서 있었습니다.
‘2009 노근리 인권평화기원 사진 및 만화 전시회’.
마침 아이에게 준 이번 방학 연구과제이기도 하답니다.
상촌에 면장으로 와 계셨던 분이
지금은 그쪽 일을 맡고 계셔서
반가이 만나기도 하였네요.

물꼬에 들리기로 한 선배 하나가 대전을 지나쳐 오기
주문해둔 베갯속을 찾아와 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어제 오후 분명 11시까지 해주기로 약속을 하였건만
사람이 가니 덜 되었다더랍니다.
4시나 돼야 된단 걸 겨우 1시로 약속을 다시 하고,
그 1시에 가니 이제 직접 찾으러 가야겠더라지요.
시골길을 어찌어찌 찾아가 겨우 받아왔습니다.
돈을 미리 다 줘서 그렇다고들 하데요.
아무렴 그렇겠는지요,
그들도 제때 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음엔
계약금을 주고 잔금을 주는 것이 좋겠단 생각도 듭니다.
세상 사는 지혜이겠지요.
어쨌든 뜻밖의 고생을 한 사람에게 어찌나 죄송하던지요.
고맙습니다.

안팎으로 걸음을 쟀던 하루였습니다.
한쪽이 너덜거리던 표고버섯동 비닐하우스를 벗겨내고,
모둠방 나무보일러에 불도 때고,
여자방 바닥 흙 미장한 위에 광목을 붙이고,
그리고 새끼일꾼계자를 위한 장을 봅니다.
가벼운 이틀이라
소박하게 안에 있는 것들을 더 잘 먹으려
최소한의 것만 들여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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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4.나무날. 추움. <여자방 바닥 천 붙이기>

오늘, 오후 내내 여자방 바닥 천을 붙였다. 종대샘은 어제 분명히 “너는 내 일에 관심 갖지 말고, 도와주지도 마.”라고 했는데 자기가 아쉽고 일손이 모자르니까 나를 부른 것이다. 내가 분명히 23일 전(11월 30일)에 일기장에 ‘다시는 종대샘 도와주지 않겠다’라고 써놓았는데 도와달라니까 할 수없이 도와주게 되었다.
나는 풀을 바르고, 종대샘은 붙였다. 항상 종대샘이 붙이는 일이 더 빨라서 종대샘은 잠깐 쉴 틈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종대샘이 기다리니까 쉴 틈도 없이 하나 바르고, 두 개 바르고 했다. 종대샘은 참, 나를 부려먹기만 하는 것 같다.
내가 바른 건 한 50장 됐다. 힘들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 붙이고 바르고 하는 일은 종대샘 혼자 10장 작업할 때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나랑 두 명이서 하니까 금방 끝났다.
끝나고 나니까는 토사구팽(?)처럼 나를 놀리고 했다. 난 진짜진짜 다시는 종대샘 안 도와줄 거다.

(열두 살/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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