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15.나무날. 맑음

조회 수 940 추천 수 0 2010.05.05 10:18:00

2010. 4.15.나무날. 맑음


걸어올라 왔으니 걸어 내려가야지요.
아이랑 달골을 내려갑니다.
춥다 하나 풀린 계곡은 물소리를 노랫소리로 달고 오고,
건너편 큰형님느티나무도 한결 움직임이 가볍습니다.
“어제 큰외삼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서울 중앙일간지 하나의 정치부 부장으로 있는 기자입니다.
생각이 많이 다르니 교류가 잦지는 않지요.
그런데 아이 크는 동안 외삼촌으로서 해준 게 없다며
지난 겨울 조카를 위해 큰 돈을 보내주었더랬습니다.
그러고도 인사가 늦고 있었는데,
간밤 먼저 전화주셨네요.
집안에 남자 형제들이 많으니
맨 꼬래비인 저는 대학을 들어가서 부르는 학형의 준말인 형이 아니더라도
형이란 호칭이 입에 뱄습니다.
“큰형이...”
그리 일컫고 있으니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소리를 쳤지요.
“아하, 그래서!”
뭔소리인가 했지요.
“물꼬의 역사가 거기서 시작된 거구나!”
호칭 말입니다.
물꼬에서 새끼일꾼들을 일컬을 때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형님이라 부르지요.
“만약 언니가 더 익숙했다면 언니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게요, 그랬을까요?
"저 큰형님느티나무도 큰언니느티나무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게요...

한 대학의 교양수업에서 특강 두 차례 있었습니다.
같은 과목이 내리 두 시간씩 있었는데
첫 시간은 초등특수교육과 45명,
다음 시간은 사회복지학과 45명이었지요.
삶의 길이 꼭 흔히 살아가는 주류의 길만 있겠는가,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다르게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물꼬의 삶에 대해 전했지요.
물론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구요.
그리고, 지구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서 우주를 향해 선 젊음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역설했습니다.
물꼬 아니어도 좋습니다.
나누면서 더 깊이 배울 것이며 더 많이 기쁠 테지요.

강의를 끝내고 담당교수님과 점심 한 끼 먹었습니다.
그런데 놀랬지요.
아직도 ‘사명자’로서의 소명을 지닌 분이 있다니...
이 시대에 여전히 ‘사람’에 관심 있는 분을 만난 게지요.
놀라웠습니다.
마치 80년대 선후배들을 만난 듯했지요.
하기야, 그러니 물꼬를 불렀겠습니다.
물꼬 이야기가 학생들한테 준 반향보다
교수님의 삶이 제게 준 반향이 더 강렬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좋은 자극이었네요.

아이랑 애니메이션 한 편 보았습니다.
<피아노의 숲>.
하네다 소년사의 잇시키 마코토의 만화책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런데 같이 볼 준비를 하면서 아이가 어찌나 부잡스럽던지요.
등받이를 가져오고 이불을 끌고 오고...
“왜 이리 부잡스러워?”
“안 그러면 오히려 (어른들 보기에)답답할 때도 있을 걸요, 히히.”
능글거리는 아이이지요.
집을 떠나있다 돌아온 아이는 성큼 커서
이젠 야단을 맞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들도 슬쩍 분위기를 바꾸어내는 게지요.

영화는 ‘카이’라는 소년이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자기 방식대로 치다가
스승인 ‘아지노’를 만나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아들로 잘 훈련받은 슈헤이가
시골로 전학을 가 카이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이미 짐작할 수 있는 대로
제도와 비제도, 혹은 주류와 비주류의 묘한 차이를
읽어낼 수도 있다 싶습니다.
자기 색깔로 피아노치기, 혹은 자기 색깔로 살기,
주제라면 그리 쓰겠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가단조 8번, 바흐 이탈리아 협주곡 프레스토,
미뉴에트, 엘리제를 위하여, 비창 들을
기분 좋게 들을 수도 있어 좋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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