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몽당계자 여는 날, 2010. 4.23.쇠날. 밤에 찾아든 굵은 비


간밤 비가 왔고,
새벽 두 시 금세기 최고의 별똥별쇼는 그만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아이들이 별똥별이 되어 대해리를 들어와 주었네요.
아이들 온다고 날 바짝 말라주었고,
심지어 후덥기까지 했습니다.
그예 밤, 소나기처럼 굵은 비 떨어졌지요,
달골 오를 쯤.

아이들이 왔습니다.
여덟의 아이들이 함께 하기로 했으나
뒤늦게 신종플루에 감염된 아이가 오지 못했습니다.
하여 4월 몽당계자는 일곱의 아이들이 함께 합니다,
아이들 보고파했던 예지샘, 장염으로 오지 못하였고,
희중샘이 일하는 가운데 귀한 연휴 이틀을 내서
어젯밤 늦게 행운샘 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류옥하다를 데리고 소사아저씨와 맞이청소를 했지요.
영동역에서 대해리 들어오는 낮 버스 편으로
선아샘이 현진 성재 준성 학주 석현 수현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지난 3월 수행하러 들어와 한 달을 머문 덕에 이곳 공간에 익숙했던 그는
하루 종일 손을 크게 보태어주었습니다.
마침 사과를 다 먹어
바깥 일 하나 끝내고 유기농사과를 공급하는 광평농장에 들렀다 왔더니
아이들이 모다 계곡 가고 없데요.
다슬기 잡으러 가자,
오자마자 현진이가 바람을 넣었다나요.

계곡은 늘 좋은 놀이터이지요.
거기 철마다 모험이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바위를 타기도 하고
바위와 바위 사이 좁은 통로로 몸을 밀기도 하고
섬과 섬들 사이를 건너는 거인처럼
바위를 밟아가며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합니다.
한참을 보낸 시간, 그러나 얻은 다슬기 겨우 한 마리.
볕을 보지 못한 봄이어서 녹조 짙었지요.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이 한번 건드린 곳은 꼭 그러합디다.
그래도 계곡은 여전히 훌륭한 놀이터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에게 던져진 사흘을 어이 보낼지 의논합니다.
여기서 할 수 없는 것은 놓으면 될 테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만도 차고 넘치니까요,
또 그걸 잘 아는 아이들이니까요.
속틀을 채운 다음 마당으로 쏟아진 아이들은
리어카도 타고 옥상도 오르고 흙놀이도 했지요.
밖이 지루해질 쯤엔 방으로 듭니다.
마피아, 주사위놀이, 술래잡기, 숨바꼭질...
일단 놀았습니다, 많이 놀았습니다.
중간고사를 끝낸 아이들도 있고,
말 그대로 잘 쉬었다 가자 했지요,
좋은 봄날을 누리고 가자 했지요.
그래서 속틀도 살펴보니
‘봄이랑’, ‘또 봄이랑’, ‘자꾸 봄이랑’, ‘끝없이 봄이랑’으로 잡혀있었네요.

땅거미 더딘 계절이라 하나
놀고 있는 아이들의 어둠은 금새 오지요.
불러들입니다, 저녁밥 먹으라고,
마치 시골 마을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쯤 있는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저녁 지어 불러들이는 에미처럼.
어찌나들 잘 먹던지요.
늘 하는 얘기, 제발 좀 멕여서 보내주셔요.
밭에 우르르 오르기 시작한 부추며 시금치며 시래기며 김치며
여기 아니라면 푸성귀들을 저리 잘 먹을려나요.
버섯전골냄비도 바닥을 긁었답니다.
잘 놀았단 말이겠지요.

달골 올라 춤을 춥니다.
아, 비 내렸습니다, 소나기처럼 내렸습니다.
여느 때라면 저녁답 달맞이길을 걸어오를 것인데
기락샘이 아이들을 실어왔지요.
아이들이 무열샘 아버지라고 반기며 행운님을 초대하기도 하였습니다.
난로에 불을 피웠고,
느릅나무며 풀이며 물오르는 존재들을 몸에 옮겨 명상에 잠겼더랬지요,
접신이라도 하듯.
앵두꽃 살구꽃 떠다니는 강물을 가져다
창고동 한가운데 놓았더니
우리의 춤을 잘도 도와주었답니다.

난롯가에 앉아 마음 털기를 했지요.
낮에 실컷 놀았다고 대동놀이는 그로 대신했더랍니다.
고민의 대부분은 공부입니다.
무슨 박사과정 논문 쓸 주제를 잡는 것도 아니고
즐거울 수 있는,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들이 저리 흔들거립니다.
안타깝고, 아쉬웠지요.
잘 쉬었다나 가라 합니다.
그래서 힘을 얻고 학교로 돌아가 또 살아가라 합니다.

달골 창고동에 뜻밖에 ‘원숭이다방’이 생겼습니다.
(원숭이다방? 무어냐 말 못해줍니다.
몽당계자에 함께 한 이들만 공유하는 뭔가도 있으면 좋지 않겠는지요.)
라임오렌지에이드가 나왔고
바나나와 사과가 나오고...
“아, 좋다. 난롯가에 앉아서 이렇게 얘기 나누니까.”
좋다, 딱 그 말 그대로였습니다.
좋다, 하고 나니 더욱 좋았습니다.
고운 봄밤이었지요.

참,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난학기 강의를 들었던 분의 전화였지요.
선생 노릇하는 이에게 성실로 훌륭한 본보기 되어주신 분이랍니다.
“저엉말, 그냥 했어요.”
리포트며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생각이 났다고
안부 인사를 넣어주신 것입니다.
드문 일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연들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과의 연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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