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9.해날. 흐릿

조회 수 963 추천 수 0 2010.05.25 03:01:00

2010. 5. 9.해날. 흐릿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금새 친구가 되듯
어른들은 일을 통해 또 그리 된다 싶습니다.
신씨할아버지네 호호할머니랑
어머니도 어느새 친구가 돼 계셨지요, 밭에서.
학교가 내려다뵈는 그 댁 밭의
잘 자란 푸성귀들이 잘났다 잘났다 하시던 어머니,
호호할머니 호미 들고 나타나신 걸 보고
올라가셨던가 봅니다.
그렇게 부추를 한 아름 얻어 오신 게 어제랍니다.
“고마워서...”
그걸 또 갚으시겠다 새벽같이 그 댁 밭을 다 매주셨지요.
늘 받는 것보다 더한 걸 주시는 당신 삶이십니다.
어찌 그리 닮아지지 않는지...

집안 어르신들이 와 계시면
일하는 속도감을 따르느라 아주 혼쭐이 납니다.
이른 아침부터 마늘밭과 고추밭을 매고
당신들이 학교 구석구석에서 보태시는 손에
식구들이 죄 당신들 바라지를 하느라 종종거리지요.
“간장을 좀 더 달여야겠더라.”
어머니는 장작 가마솥에 종일토록 장을 달이는 한편,
언제 또 다듬어놓으셨는지 부추가 김치로 나왔습니다.
“이거 향이 참 좋네.”
파드득나물이 맛나다 말씀하시며
댁에 가셔서도 키워보겠다 그 뿌리도 여럿 캐놓으셨지요.

한편, 남자 어른들은 뒤란에서 구슬땀입니다.
엔진톱으로 한 더미의 폐표고목을 자르고 옮기고 쌓고,
그리고 뒤란 청소에 나섰습니다.
수년을 애만 태우고 정리가 되지 않던 그곳인데
어르신 등장하니 일이 됩니다.
“내가, 정리하는 법을 배왔어요.”
소사아저씨 그러셨지요.

아, 그런데, 허망한 일 하나 있었지요.
왼종일 다시 달인 멸간장 아니던가요.
대소쿠리에 받쳐두었더랬는데,
해거름에 들여다보니 이런, 장이 겨우 바닥에 있습니다.
“아이고, 우짜믄 좋노?”
보람도 없이,
여러 집에서 나눠 달라 부탁을 했던 터인데,
눈치 채지 못한 아주 작은 구멍 하나 있었던 겝니다.
“새는 그릇인 줄 우찌 알았겠노?”
보고만 있던 이도 이러한데,
어머니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라나요.
소사아저씨한테 당장 저 멀리 그 들통 버려버리라 하였습니다.
일을 하며 사이사이 살핌이 필요하다,
잘 배운 사건이었답니다.

“맛나네.”
여간해서 어르신들한테 듣기 어려운 소리인데
(여기 음식 네 맛도 없고 내 맛도 없다,
싱겁기도 하여 자주 그러셨더란 말이지요.)
아주 맛있게 식사들을 하셨습니다.
나이 드니 좀 나은 모양일까요,
하다 보니 좀 늘기라도 하였을라나요?
헌데, 음식이란 하는 사람의 실력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인 법 아닐는지요.

아이가 머슴을 살러가는 밤입니다.
황간의 유기농가 광평농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종일 일을 하고 오는 게 벌써 여러 주입니다.
아이를 부려놓고 돌아오니
한숨 주무신 어른들은 이미 떠나셨더랬지요.
나이를 먹어도 부모 그늘입니다.

여행을 가자는 벗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공부 하나 하고 있은 지 벌써 4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물꼬의 침잠기이기도 하였지요.
서서히 기지개를 켤 즈음에 이른 게지요.
애썼다고 이번 학기를 마치며
가벼이 길 한 번 같이 떠나자는 소식이었습니다.
마음씀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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