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4.쇠날. 맑음

조회 수 876 추천 수 0 2010.06.12 15:00:00

2010. 6. 4.쇠날. 맑음


밭딸기를 따먹습니다.
잎 뒤로 바알갛게 더는 숨을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철이 거기 이르렀네요.

아침 저녁 모를 심었습니다,
이앙기로 돌려도 가장자리는 손이 가야 하지요.
오후에는 읍내 한 어르신 댁에 사과잼을 들여놓고 왔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마지막 어린이날을 기꺼이 내 준 시간으로 만든 잼입니다.
열다섯 시간을 가마솥방에 있었더랬지요,
씻고 벗기고 자르고 썰고 다지고...
물꼬도 나눌 게 있어 좋았지요.
읍내에서 물한리에 사는 부부 하나 만났습니다.
“애은 어데 보내고 두 분만 나들이셔요?”
우리 애가 학교를 아니 가니
넘의 애도 이 시간 나다니는 줄 착각했지요, 뭐.
“걔는 아홉시까지 있다가 와요.”
“상촌초등? 아아...”
읍내에서 6학년들이
일제고사를 앞두고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한단 소리는 들었지만
산골까지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하아, 참...

사범대 한 과에 가서 강강술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늘 하는데도, 참 재미난 놀이입니다.
하기야 천날 만날 하던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그 단순한 놀이도 재밌지 않던가요.
젊은 친구들도 즐거워하였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옛적 좋은 풍속이 그리 이어질 수 있으니.

지방의 한 사범대를 다니는 청년과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세상에, 그과는 아침저녁 교수한테 문안인사를 드린다데요.
하기야 이름이 문안이지 과대표한테 전달사항이 있어 들리라고 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아침마다 그리하라 했다니 얼마나 대단한 권력인지,
놀라웠습니다.
이태쯤 되었나봅니다.
관계하고 있던 한 과의 젊은 친구들이
교수퇴진 운동을 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이든 사람 처신이 참 어렵다.”
문제를 같이 통감하면서도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무시한다, 수업 못한다, 억압한다,...
공금횡령이라든지 확실한 범법 행위가 아니고
이런 심정적인 것들을 어떻게 증명해낸단 말인가요.
게다 교수퇴진이 어디 쉽던가요, 그래서 여전히 철밥통이 아니더냔 말입니다.
승산이 없이 되려 학생들이 다칠까 걱정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도와줄 수 없었던 까닭은 여럿이었지요.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게 한 사람의 생을 처참하게 만들 권리는 없다.”
아마도 그 얼마 전
저 역시 어떤 갈등 상황을 빠져나왔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치욕스러움으로 한 개인에게 자살까지 부르는 심정을 겪은 적 있었지요.
문제는 그의 변화가 아니겠냐며
학생들 대표와 교수대표 사이의 양쪽이 다리 역할은 해줄 수 있겠다 했습니다.
“양쪽으로부터 욕 먹기 딱이겠지만...”
하지만 그땐 또 그게 최선이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미움의 대상이 필요했던 그 교수는
결국 그 일의 선동자, 혹은 주모자로 제게 화살을 보냈더랬습니다.
세상 참 재미나지요.
그렇다고 학생들이 거부했다는 사실이 어디로 가는가 말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은데,
참 답답한 노릇이었지요.
결국 그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 그때 학생들을 말린 일에 대해 슬쩍 후회스러움도 있답니다.
한 친구가 단지 그 교수 때문에 학교를 떠나겠다는 소식을 들으며
더욱 그러했지요.
그때 학생들을 도와주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은 아니었을까 하고.
지방대에서 학생 하나 유치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요.
그런데 학생이 떠나는 까닭이 선생이라니...
참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저 말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분노가 널 짓누르게 놔두지 마라.”
분노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지요.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나는 화가 날 때마다 화를 가라앉히는 수행을 한다. 내 안에 일어나는 분노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거나 파괴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화를 다스리고 위안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대는 커다란 기쁨을 갖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틱낫한이 미국의 한 교도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호흡법을 소개했지요.
그런데, 그것은 결국 저를 위한 위로였고,
지금 또한 위로가 되어주고 있네요...
모든 노력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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