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17.나무날. 오후 흐림 / 새로 마련하는 해우소(解憂所)


무운샘,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도예실(말이 그렇지 사실 창고에 다름 아닌) 안
이러저러 쌓인, 도대체 정리가 되지 않던 물건들을
죄 밖으로 끄집어내고 삽질을 시작하셨지요.
예순넷의 노구가 무색하게 일을 하십니다.
바라보면 몸에 흐름을 타고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보다 몇 배의 일을 해내실 수 있는 까닭일 겝니다.
그것이 그냥 붙었겠는지요.
얼마나 많은 날들을 노동으로 채워오셨을 라나요.
“처음으로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요.”
서울서는 때가 되어 먹다가
노동으로 비로소 허기가 져 밥을 먹는다는 찬호샘이었습니다.
일 잘하는 노인네(하하)를 따르자니
힘은 또 얼마나 들었을 라나요.
“뭐라도 손을 보탤라고...”
설거지라도 돕겠다 오셨다는 지혜샘은
정말 부엌일을 이만저만 도와주시는 게 아닙니다.
달골 식구들은 달골에서 뚫린 방충망이며 창문들을 살펴주고 계셨지요.

아이들은 저들끼리 신났습니다.
어른들을 도와 저들 몫의 일을 하기도 했지요.
공사에 쓸 돌을 한참 나른 뒤엔
계곡으로 물놀이도 다녀왔습니다.
이곳에 사는 하다는 하다대로, 도시의 저들은 저들대로,
서로 잘 나누고 있었습니다.
공도 차고, 야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후식으로 먹을 딸기도 따고,
책도 보고, 바둑도 두고, 쌓기놀이도 하고...

잠시 밖에 나가 같이 학습을 하던 동료들에게 밥 한 끼 사고 들어옵니다.
불성실한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한 약속에 그만 늦어져
어제 모두를 곤란하게 한 일이 있었더랬지요.
“괜찮아요, 저희도 자주 있는 일이에요.”
말하는 품이 참 예뻤습니다.
약간의 불편함 속에 놓인 나이 많은 동료에게
나름 마음을 써주던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사람 관계 무에 별 게 있을려나요.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딴 딸기로 시럽을 만들고 있을 무렵
대출이 결정됐으니 나머지 서류들을 챙겨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우렁이종패사업보고서에 보낼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황간의 다른 논에서 사진이 오고...
그리고 무운샘이 돌집흙집에 관한 책을 내기로 했더랬는데,
마침 도서출판 황소걸음에서 계약을 하게 되면서
책 만드는 일에 한 동안 힘을 쓸 제 노고를
덜어주게 되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지금 부엌 뒤란 도예실을 생태해우소로 바꾸는 무운샘의 척척 손처럼
이곳을 둘러싼 일들도 그러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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