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20.해날. 꾸물꾸물

조회 수 858 추천 수 0 2010.07.06 23:43:00

2010. 6.20.해날. 꾸물꾸물


날 꾸물거리고
산야 초록은 더욱 짙어가고
논의 우렁이 알은 분홍색이 선명도 합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
비가 오면 비가 내려 걱정인 것이 사람살이이지요.
가난살이가 더 그럴 겝니다.
창고동 지붕이 또 한 곳 문제였지요.
물이 샙니다.
행운님과 올라가보았습니다.
아직 내린 비로 물기 남아있어 까닭을 캐내진 못했습니다.
낼 다시 오르려지요.

이른 아침 떠나려던 조진희님과 김광락님,
벌여놓은 일에 그만 발이 묶여
벽체 올리던 생태해우소에 당신들 기술 보태셨지요.
“내 기계는 오-래 된 것들이잖아.”
무운샘도 조진희님의 새 기계들을 어찌나 반기시던지요.
며칠 손을 보태던 김찬호님과 한준, 한민이 서울 가고
어제 우르르 들어왔던 손님들도 나가고
점심 밥상에 달랑 여섯이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단촐했지요.
점심을 먹고 이춘삼님까지 떠나자
저녁 밥상은 다섯이었네요.
참, 며칠을 양양에서 가져온 요걸트를 아주 잘 먹고 있답니다.

지혜샘이 부엌도움꾼으로 계시니
이러저러 짬을 좀 낼 수 있습니다.
교무실의 쌓여만 있던 작년 물건들 몇도 정리하지요.
한 수첩의 맨 앞 장에 씐 글귀를 다시 읽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행복과 행복의 원인을 갖게 되기를,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해방되기를,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즐거움과 즐거움의 원인을 갖게 되기를,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좋아함과 싫어함에서 벗어나 대 평안에 이르기를.’
네, 그리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지난 5월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의 책 하나를 읽었습니다.
울고 웃었지요.
오늘 그 얘기 잠깐 나왔네요.
부모에게 버림 받은 여섯 살 짜리 아이,
점심값으로 받은 100엔을 들고 고베 백화점까지 걸어가
배가 고팠으나 빵을 사지 않고 동생이 돌아오면 줄 장난감을 삽니다,
새엄마는 그 사이 아이를 업고 도망가버렸는데.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절망이리라. 그 절망 속에서도 상냥함을 잃지 않는 이 아름다운 인간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이타니 선생은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그게 아이들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하이타니 선생은 어린이 문학잡지<기린>에 관여하여
어느 날 한 학교에 배달을 갔는데
나이 지긋한 담당 여교사가 이제 그만 보겠다 합니다.
왜냐 물으니 아이들의 시 중에 방귀를 주제로 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나요.
돌아와 씩씩대고 있는데 3학년 아이가 그러더랍니다.
“그럼 더 좋은 시를 써 올게요.”
‘내가 어른이라면/간호사가 되어/방귀를 뀌겠습니다./병원에서 진찰할 때도/방귀를 뀌겠습니다./환자가 꾹 참으면/자꾸자꾸/방귀를 뀌겠습니다./결혼하고도 방귀를 뀌겠습니다./내가 낳은 아이한테도/방귀를 뀌게 하겠습니다./좋은 일이 있을 때도/방귀를 뀌어 축하하겠습니다./내가 좋은 일을 하고 죽으면/모두 무덤에 와서/칭찬하겠죠/그때도 방귀를 뀌어서/사람들을 놀래키겠습니다/하느님이 화를 낼 때도/뿡뿡 방귀를 뀌어/얼렁뚱땅 넘어가겠습니다.(3년 고잔 료코)’
이게 아이들입니다.

하이타니 선생은 언젠가 젊은 여교사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른바 ‘사례연구’시간이었지요.
“K학생의 경우, 편부모 슬하에서 자라 성격이 어둡고 도벽이 있다. 침착하지 못하며 10분을 진득하게 앉아있지 못한다. 행동이 거칠고 힘없는 여자아이에게 폭력을 쓴다.”
이런 보고가 지루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이 K라는 학생과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씨름했는지는
끝내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지요.
‘이것으로 보고를 마칩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젊은 여선생이 자리에 앉았는데
이어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합니다.
‘...선생들이 일어나 아이들의 악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선생들은 생기가 넘쳤다. 나는 등줄기가 오싹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인간의 슬픔을 바라보고 있을까.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절망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일까. 그런 생각에 나는 몹시 괴로웠다. 나 역시 이들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던 교사였기에.’
으윽, 내 모습은 아니었을 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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