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21.달날. 맑음 / 무운샘의 해우소 공사 닷새째


무운샘의 해우소 공사가 닷새째를 이어갑니다.
틈틈이 이곳저곳 봐주셔얄 것도 많지요.
보다 독립적 삶을 요구하는 게 또 산골살이이지요.
선생님은 아주 이력이 나신 일인데,
우리네는 어째 이리도 어설픈지...

우리가 정신없이 사람의 삶을 살 때
밭의 것들은 저들대로 또 열심히 살았습니다.
며칠 동안 상추와 부추가 밥상의 큰 반찬이 돼주었지요.
가리배추도 제법 컸습니다.
뽑았지요.
“걱정 마요. 내가 김치도 담아 놓으께.”
당신 댁에서도 올 해 아직 담아보지 않았던 김치를
지혜샘은 예서 담게 되셨습니다.
군청이며 면사무소며 법원이며
읍내 나가서 몇 가지 해얄 일들이 있었지요.
법무사한테 맡기면 수월은 하겠지요,
그러나 그만큼 또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관련 건 3건을 직접 처리키로 하였지요.
요 두어 해에 단련되어 엄두를 낸다고는 했으나
여전히 서류 일들은 지레 까마득해집니다.
그런데 할 만 하더군요.
모른다고 외려 일일이 짚어가며 등기계 직원이 다 알려줍디다.
게다 어떻게 하면 덜 움직이고 일을 할 수 있는지도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게 또 살아집디다.

논에 물을 대도록 한 물호스가 묶여있습니다.
누가 물을 돌리려 해놓은 것이겠지요.
이맘 때면 더러들 물꼬 싸움이 납니다.
이쪽에서 막고 저쪽에서 막다가
이곳에서 틔우고 제서 틔우고
그러다 눈에 띄게 되면 한바탕 삿대질이 오가고...
그렇게 핏대 세우다가도 다음날이면 또 안부를 묻는 게
시골살이이지요.
요새야 워낙에 관개가 잘 되어있으니 그런 일 많지 않다 하나
아주 가끔 으레 있어야 하는 일처럼 이맘 때 그런 일 있고는 합니다.
뭐 아직은 심각한 수준 아니고
마른 장마라고는 하지만 간간이 비가 있기도 하니
논이 쩍쩍 갈라지는 일은 아직 없네요.
일단 물관을 풀고 다시 물을 넣어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 책 하나 잡고 있습니다.
‘글쓰는 사람들이 가급적이면
고백의 글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어요.’
그 구절 읽는데 낯이 화악 달아올랐습니다.
오래 찔린 일이 있었던 게지요.
모든 아이들을 무사히 이끌고 가야하는 내가 쓰러져선 안된다,
그 핑계로 겨울산 모험에서 두 차례나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덟 살 아이가 눈밭에서 양말이 다 젖었는데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어 양말을 벗어주는 걸 외면했고,
5학년 여자 아이 장갑이 다 젖었는데
내 장갑을 벗어주질 못했습니다.
추위를 공포에 가깝게 많이 탄다는 게 또 다른 까닭이었지요.
발가벗고서라도 살아 돌아오는 게 아이들과 모험을 떠난 선생일진대
나 말고 다른 교사들도 많다는 비겁한 핑계 아래
마른 양말과 마른 장갑으로 산을 내려왔던 겨울이 있었던 겁니다.
아, 어쩐답니까.
두고두고 절 얼마나 찔렀던 일들인지요.
다신 그러지 않을 겁니다, 아암요.
옷을 다 벗어주고도 이 악물고
아이들과 겨울산을 빠져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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