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14.흙날. 오후 소나기

조회 수 1052 추천 수 0 2010.08.26 22:45:00

2010. 8.14.흙날. 오후 소나기


아침을 먹고 하경이네가
진혁샘과 재훈샘, 그리고 나영이와 윤구네들도 태워 서울로 향했습니다.
대안학교에서 일하시는 진희샘,
기꺼이 이 뜨거운 여름날의 한 주를
갓난쟁이 바라지로, 한걸음 더 나가 가마솥방에도 붙어주었더랬습니다.
그의 열무김치는 정말 맛났지요.
엉켜 던져놓은 실타래(어려운 문제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실타래)를
그예 풀어서 몇 날 며칠 감던 샘의 집념에도
모두 혀를 내둘렀습니다.
가끔 오셔서 그렇게 손대지 못한 숙제 같은 일들
또 해주십사 했더랍니다.
점심차를 타고 진주샘 세아샘 아람샘도 나갔습니다.
뒤따라 선정샘이 성빈이와 세현이랑도 떠났지요.
세현이를 안고 노는 사이
끝까지 부엌 정리를 그예 다 하고 손을 닦던 그이입니다.
냉동실에 다져놓은 마늘이며
남은 이들을 위한 배려가 잔뜩 밴 냉장고 앞에서
그만 가슴 먹먹했지요.
사람을 생각하는 게 어떤 건지,
책임지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선정샘이 또 잘 가르쳐주고 갔더랍니다.
아, 140 계자의 꽃 5개월 우리 세현이,
당장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빈이가 그토록 좋아한다는 복숭아,
졸음에 겨워하다 실어 보내질 못했네요,
마을에 복숭 농사짓는 댁에 가지러 가겠다 말까지 넣어놨는데.
택배로 보내야겠습니다.

모두 대해리를 빠져나간 뒤 소나기 한바탕 내렸습니다.
창대비로 내렸습니다.
여름일정을 끝내고 그리들 돌아갔단 말이지요.
참아주었던 하늘이었답니다.

큰 도시를 다녀옵니다.
유달리 더웠던 여름이라고 3주 내리 고생했다며
선배 하나 달려와 운전기사가 되어주었지요.
아이 치과도 가고,
나간 길에 영화도 한 편 보았습니다.
아이는 <토이스토리 3편>을, 어른들은 <아저씨>를 보았습니다.
한국영화는 돈 주고 보자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영화가 정말 현실의 반영이라면
(물론 상상과 비약과 과장이 함께 함은 물론이겠지만),
사는 일에 힘이 빠집디다.
심장이 멎지도 않았는데 장기를 떼어내 팔고,
아이들을 팔고, 그 아이들을 범죄에 쓰고...
사람 살아가는 게 정녕 이 지경이란 말인가요.
지나간 시절이겠거니 고개 돌리지만
사회의 어둔 구석이라 일컬어지는 부분들이
여전히 있잖을까 싶데요.
산골 구석에서의 삶에는 닿지 않았던 세상 소식이었던 게지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려나요,
그저 내 일이 아닐 수 있도록 조심조심 살아가면 되려나요...
물꼬가 할 일이 보다 많아질 거란 예감이
자꾸만 드는 밤이었더랍니다.

아, 영화 상영 시간을 기다리며 타로점을 보지 않았겠는지요.
아이한테 삼천 원 보시하라 했지요.
마침 우리 가족이 한국에 없던 시절
온 나라를 휩쓸고 간 타로점이었다 했습니다.
궁금도 했더랬지요.
물꼬의 날들이 어떨까를 주제로 넣었답니다.
카드를 일곱 장 뽑으라더군요.
과거를 말하는 두 장에는
막대기를 한 아름 안고 힘들어하는 이와
그 막대기가 엎드려있는 이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많은 일들로 무거웠더라네요.
현재를 가리키는 두 장 가운데 하나는
멀리 산 위로 해가 솟고 있었습니다.
서광이 비치더란 말이지요.
하나는 뭐였더라...
미래를 말하는 두 장은
갈퀴를 날리며 말이 달리고,
사람들이 둘러서서 축배를 들고 있었습니다.
좋은 얘기겠지요.
마지막 한 장은,
남의 운명이니 다 밝히면 천기누설이 아닐까 걱정하여 덮겠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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