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9. 2.나무날. 비

조회 수 948 추천 수 0 2010.09.14 04:55:00

2010. 9. 2.나무날. 비


"아, 저기 보여요?"
잠시 하늘 맑았을 적
낮달이 하늘 한가운데 떴습니다.
괜스레 알지도 못하는 지나는 이에게 말을 걸며 같이 보았더랍니다.
연일 비 내리는 속에도 저런 광경이 숨통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그러합니다.

간밤 창문을 열어두고 자던 아이가
깊은 새벽 건너왔습니다.
“이불이 다 젖었어요...”
오줌을 싼 건가 했지요.
열어젖힌 창문으로 비 다 들이쳐
그만 온 방이 물바다 되었다 합니다.

비로 헐거워진 둑들이 곳곳에서 무너집니다.
윗논 둑도 무너지고 말았지요,
둑이 좀 허술하긴 했습니다만.
달골 집 뒤란도 늘 걱정이지요.
그나마 지난 학기 머물고 계셨던 행운님네가 단도리를 잘해주신 덕에
이리 무사할 수 있나 봅니다.
이른 아침 소사아저씨는 열무밭에 약을 쳤습니다.
쌀뜨물 1말 소주 2병 식초 2컵 목초액 3컵,
그리 기록하고 있었지요.
삶은 그리 계속됩니다.

나날을 살아내는 일은 누구에게도 녹록치 않습니다.
먹고 입고 자고 관계 맺고 하는 일상이라 부르는 일들은
날마다 삶을 영위해나가는 우리가 날마다 수행해야할 따끈따끈한‘현재성’입니다.
그래서 당장 마주치는 것들로부터
우리 삶의 대부분의 날들이 채워진다 여겨집니다.
그러나 역사로부터 세계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증명하듯 곳곳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 자주 잊기도 하지만,
그래서 각성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역사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확인해줍니다.
이는 거대자본의 그늘 아래 전 세계가 중심화 되어가는 현대에
더욱 그러한 듯합니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저는 시류에 편승한 처세술 같은 류의 책은 잘 보지 않습니다.
게다 때로 그런 책은 정작 문제의 본질을 보는 지혜보다
개인에게 많은 문제를 전가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의 눈을 때로 흐리게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얼마 전 도서관 애용자라고 두 권의 책을 선물 받았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 수십 쇄를 발행한 (Malcolm Gladwell)였습니다.
아웃라이어는 결국, 아웃라이어가 아니데요.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었다. 그들의 성공은 물려받거나, 자신들의 성취했거나 혹은 순전히 운이 좋아 손에 넣게 된 장점 및 유산의 거미줄 위에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성공인으로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물론 이 책은 아웃라이어,
정상에 오른 이들의 성공이 다양한 기회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사례분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역사, 그리고 전 생애를 걸쳐 일어나는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연결고리를 갖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로 들기에
적어도 부족하지는 않다 싶습디다.
Brofenbrenner의 생태학적 체계 이론에서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변화와 사회역사적인 환경을 포함하는 ‘시간체계’도
결국 이런 중요성 아니었나 싶더이다.

계자를 오는 아이가 자라 중고생 때는 새끼일꾼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품앗이일꾼이더니
직장을 지니면서부터 논두렁이 되는
참 긴 날을 사람들의 성장사를 봐왔더랬습니다.
물꼬의 인연들이 참으로 깊습니다.
두어 주 전 카타르에서 다녀간 석성민샘이,
세상에, 마흔을 향해가는 나이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논두렁으로 가입하고 큰돈을 보내왔습니다.
성민샘이 써놓은 자기소개란.
* 금액: 쌈짓돈 나는 대로
* 하는 일: 월급쟁이
* 하고 싶은 말: 뭐라 써야할 지
그가 대학생이던 시절 1994년 첫 계자를 같이 한 뒤
몇 차례의 계자를 함께 보낸 그이지요.
고맙습니다.
그들이 있어 물꼬가 있었고,
그리고 또한 그들이 있어 물꼬가 있습니다.
허투루 새지 않게 잘 쓰겠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먼 나라에서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2424 2010. 9.15.물날. 맑은 가을하늘 옥영경 2010-10-01 1090
2423 2010. 9.14.불날. 비로소 가을이 시작되는 하늘 옥영경 2010-10-01 1056
2422 2010. 9.13.달날. 갬 옥영경 2010-09-29 1084
2421 2010. 9.12.해날. 밤새 내리던 비 개다 옥영경 2010-09-29 1244
2420 2010. 9.11.흙날. 비 옥영경 2010-09-18 1027
2419 2010. 9.10.쇠날. 마른 비 2010-09-18 978
2418 2010. 9. 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0-09-18 1010
2417 2010. 9. 8.물날. 갬 옥영경 2010-09-18 1032
2416 2010. 9. 7.불날. 비 내리다 갬 옥영경 2010-09-18 1078
2415 2010. 9. 6.달날. 구름 꽈악 옥영경 2010-09-18 980
2414 2010. 9. 5.해날. 늦은 밤비 옥영경 2010-09-18 1031
2413 2010. 9. 4.흙날. 가을 폭염 옥영경 2010-09-14 1086
2412 2010. 9. 3.쇠날. 윽, 늦더위 옥영경 2010-09-14 969
» 2010. 9. 2.나무날. 비 옥영경 2010-09-14 948
2410 2010. 9. 1.물날. 바람 서서히 일어 퍼지더니 비 내리 꽂기 시작 옥영경 2010-09-14 1155
2409 2010. 8.31.불날. 창대비와 해가 번갈다 옥영경 2010-09-14 1007
2408 2010. 8.30.달날. 많은 비 옥영경 2010-09-13 963
2407 2010. 8.29.해날. 비 옥영경 2010-09-13 952
2406 2010. 8.28.흙날. 비 좀 옥영경 2010-09-07 1238
2405 2010. 8.27.쇠날. 비 올 듯 올 듯 옥영경 2010-09-07 113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