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1.나무날. 맑다 밤비

조회 수 1074 추천 수 0 2010.11.02 09:22:00

2010.10.21.나무날. 맑다 밤비


안개에 잠긴 아침이었습니다.

베르디에게 곡을 봐달라고 찾아간 젊은 작곡가가 있었다 합니다.
“아름다운 곳도 있고 새로운 곳도 있군.”
그의 평 앞에 젊은이는 우쭐해졌더라지요.
대가가 그리 평가해주니 말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곳은 새롭지 않고, 새로운 곳은 아름답지 않네.”
우리 사는 일이 그렇습니다.
조금 가진 재주에 성급하게 우쭐해하고
조금 가진 특기에 지나치게 자만하고...
“낙엽 떨어집니다. 더욱 자세를 낮추라는 가을입니다.”
그 얘기의 끝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문장이었지요.

계자 앞두고 남아있던 청소들을 합니다.
늘 쓰레기를 정리하는 게 퍽 일이지요.
덜 쓰고 산다지만 밖으로부터 들여오는 것들이 있고,
그건 고스란히 껍질들을 낳습니다.
음식물들 관련한 것들이야 장순이와 쫄랑이, 닭들이,
그리고 거름장이 해결을 돕지요.
쓰레기봉투가 젤 편한 방법이지만
돈도 돈이고 우리가 살고자 하는 방향을 봐서도
그건 선택의 최하위에 있습니다.
가끔 해진 뒤
낮게 깔리는 지독한 냄새에 머리를 앓을 때가 있지요.
모든 걸 태우는 것으로 처리하는 어느 이웃의 방식입니다.
시골에서 대기오염이 더 심각하다는 소리가
그래서들 나오는 겁니다.
태우기에 적절한 것만을 모아 소각로로 넣고,
활용이 가능한 것은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데
이게 또 때로는 쓰임보다 쟁여놓는 용도로만 있기 일쑤입니다.
사는 일이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집중되는 듯한
먼지풀풀 시간이지요.
그것은 ‘정리’ 즉, ‘책임’과 관계한 것이어 더욱 그러하겠습니다.

인천의 김미향님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몽당계자에 아이 보낼 준비하며
장보러 갈 건데 필요한 거 있음 말하라 했습니다,
챙겨보내신다고.
그 마음들로 물꼬가 또 나날을 더해갑니다.

몽당계자 준비들을 합니다.
식단도 짜고, 일정도 이리저리 궁리해보고, 춤명상도 챙기고, ....
낼 오전에 나가서 치러야할 일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좀 필요한데,
자정이 다 돼 가는 지금에야 가방을 엽니다.
그런데 마음은 벌써 들어오는 아이들을 맞고 있지요.

낮에 잠시 서가를 걷던 중 전경린의 <황진이>를 빼내들었더랍니다.
“지금은 독이 묻은 화살을 빼내는 시간입니다.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고 무슨 독이 묻었고 얼마나 깊이 박혔나 따지기 전에 먼저 빼내야 하는 것입니다. 절에 와다 생각 말고 부처를 의식하지도 말고 옆의 일에 마음 쓰지도 마십시오. 눕고 싶으면 눕고 먹고 싶으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고 울고 싶으면 울고 가만히 앉았고 싶으면 가만히 앉았고 그냥 자기를 돌보며 한량없이 마음을 내려놓고 지내십시오. 맹자는 늘 처지가 지금이라 했습니다. 이제 막 태어난 듯 걷쟠곳에 머무는 동안 앞일도 걱정 말고, 지난 일도 떠올리지 마십시오. 포식이 육체를 해치듯 너무 많은 생각도 정신을 해칩니다. 상처가 나으면 살아갈 용기도 생기니 그저 편히 지내며 세상을 버리려 했던 마음을 돌려 눈을 뜨십시오.”
양반가의 규수로 크다 어느 날 천민으로 추락한 황진이에게
진관스님의 안내가 그러합니다.
얼마쯤 뒤 기운을 차린 황진이에게
이제 큰절을 돌며 맨발로 백팔 배를 하라지요.
황진이 묻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나요?”
“산에 숨지 않고 속세로 내려가 죄 짓고 살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함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오히려 큰 일이 아닙니다. 죄 짓지 않고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모든 죄는 저마다 자기 속에서 사해질 것이니 타인의 죄는 타인에게 주고 자신의 죄는 마땅히 스스로 풀며 사십시오. 모든 고통은 한계가 있어 그 너머에 진실이 있으니 느낄 수 없을 때까지 느끼십시오. 그것이 고통과 진정으로 관계하는 법입니다.”
산에 숨지 않고 속세로 내려가 죄 짓고 살 수 있는 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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