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5.쇠날. 맑음 / 가을 단식 닷새째

조회 수 961 추천 수 0 2010.11.16 17:31:00

2010.11. 5.쇠날. 맑음 / 가을 단식 닷새째


며칠 내내 은행을 털었고,
동쪽 개울에 가서 씻고 건져
평상 위에 펼쳐 말렸습니다.
단식을 하지 않는 식구들은 벌써
난로 위에 펼쳐 한 판 구워도 먹었지요.
한 해 내내 얼마나 요긴한 주전부리가 될 것인지요.
겨울날에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와 머물 때도
빈 논에 들어 불 피우고 둘러앉아 오물거릴 그것들이랍니다.

아직 남은 감을 따기도 하였습니다.
마침 감따개용 장대도 구비를 하였습니다.
대문 앞에 섰는 것부터 또 털어보았지요.
그런데 따내려도 손이 닿지 않아 매달린 게 더 많았더랍니다.
그건 그것대로 새들의 밥상이 되기도 하고
벌레들의 밥이 되기도 할 테지요.

단식을 하면 몸이 하는 말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됩니다.
자기 몸이 어디가 약하고 아픈지 대번에 알지요.
통증이 일어나니까요.
고통스럽지만 내 몸을 아는 귀한 시간이 됩니다.
보통 사나흘 경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간밤이 그러하였지요.
비위가 지나는 혈자리가 죽을 듯이 아팠습니다.
자정까지 아이가 와서 주물렀고,
그리고 잠이 깬 식구 하나가 올라와 안마를 이어갔지요.

여러 공동체에서 상처 입은 이와
국가고시를 아주 오랜 시간 준비해오던 이가 찾아 온다 연락 주었습니다.
몇 차례나 오려했으나
번번이 여기 사정이 허락지 못할 때였지요.
더욱 귀한 만남이 되려고 그랬던가 봅니다.
이번만 해도 왔으면 하고 홈피 들어와 보니 마침 단식 주간이더라나요.
“아무래도 지나서 찾아뵈어야겠지요?”
그래서 보식이 끝날 무렵 오기로 하였습니다.
이곳이 지친 이들에게 쉼과 치유의 시간과 공간일 수 있다면
그 역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려나요, 그 존재가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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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5.쇠날.맑음. <보식 둘째 날(몸무게: 59.5kg)>


오늘은 평소와 느낌이 다르지 않았다. 단식을 한다는 느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침은 늦게 일어나서 굶고, 점심과 저녁은 버섯, 호박, 당근 등을 넣은 엄마표 야채죽을 해 먹었다. 간도 적당히 잘되고, 맛도 일품이여서 너무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어도 산에서 먹은 초코파이와, 굶었을 때 먹은 밥을 따라갈 수 없듯, 이 야채죽도 며칠 굶었기 때문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야채죽 때문에라도 단식을 다시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는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낼모레면 나도 밥을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힘들다는 단식과 회복식 사흘 중 이틀을 끝내 좋다. 이때까지 잘 버틴 것 같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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