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뒤 산살림들살림이 있는 쇠날입니다.
먼저 도랑을 메운 풀을 좀 뽑을 수 있겠냐는
소사아저씨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곧 장마이고, 배수로를 확보해야지요.
그거 아니라도 풀 관리에 내내 시간을 들이는 유월입니다.
아이들이 그곳부터 갔지요.
호두나무 아래까지 훤해졌습디다.
다음은 미나리밭에 듭니다.
가까이 있는 것도 못다 먹고 철이 지난단 말이지요.
그 사이 부추도 상추도 쪽파도 뜯고 뽑습니다.
다듬고 얼마쯤은 장아찌를 만들고, 얼마쯤은 비빔밥에,
또 얼마쯤은 무침으로, 그리고 찌개에도 넣을 것입니다.
오늘은 미나리강회!
“미나리강회가 뭐예요?”
한 번도 못 먹어 봤다네요.
아무렴 먹어봤겠지요, 이름을 몰랐지,
표고버섯이며 홍고추 청고추 노란지단 하얀지단을 돌돌 마는.
“근데 우리 집엔 지금 뭐가 있을라나...”
오이와 달걀과 홍당무가 있었습니다, 물론 두부도.
음식은 늘 재료를 따를 밖에요.
그리고 미나리만으로도 말아 초고추장을 곁들였지요.
멀지 않은 곳에 부대 몇 군데 있습니다.
해마다 그곳의 도움을 받고는 하지요.
오늘 한 곳에 지원을 요청할 일이 있었습니다.
낼모레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일이 있는데,
다른 때라면 준환샘이랑 아이들을 함께 나눠태우고 갈 것을
마침 서울 가고 아니 계십니다.
그렇다고 귀하게 잡아놓은 시간을 놓기가 어렵지요.
언제 또 아이들과 이럴 기회가 있겠나 싶어 강행키로 합니다.
게다 또 언제 아이들이 군 수송차량을 타보겠는지요.
그 건으로 오늘 한 부대의 대장님이 인사 겸 겸사겸사 오셨더랬습니다.
근데, 군도 주말은 쉽니다.
하지만 사적으로 승합차 한 대를 끌고 오는 건 그리 무리가 아니겠다셨습니다.
제 차랑 나눠 실어가기로 했지요.
이동학교 답사 때 다녀갔던 승연샘 오셨습니다,
준환샘 빠진 자리로.
두루두루 따뜻함을 나누는 분이라 읽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지수가 높다고 할 거나요(?).
그런데, 20년 전의 한 친구의 소식을 뜻밖에 그로부터 듣습니다.
그 마을에 함께 살면서 벌써 9학년이나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요.
서로 그리 잘 알지는 못해도 고왔던 친구로 기억합니다.
세월 참 금방입니다.
이리 살다 그만큼 금새 죽음에 이를 테지요.
그저 지극하게 살아야지 합니다.
헌데, 사람 자리란 게 참...
대표교사이고 적지 않은 세월을 그 학교에서 보낸 승연샘인 줄 아는 지라
또 자신의 아이를 보며 그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의 처지도 겪은 분이라
이동학교가 지내왔던 과정들에 대해 이러저러 투정을 하게 됩디다.
하소연하고 위로받고 뭐 그런 시간들이었네요.
내 마음 편차고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아니었을려나요.
하기야 그것도 사람 봐가며 하는 거지요,
당신 팔자려니 여겨주실 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