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15.불날. 맑음

조회 수 1327 추천 수 0 2011.11.23 01:28:56

 

 

김치 조금 담았습니다.

요새는 이렇게 잠깐 잠깐씩 담아 먹습니다,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곧 김장이니.

마침 몇 가지 재료가 있어 겉절이도 물김치도 백김치도 담았지요.

 

더덕 알타리 물김치;

더덕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 쓴맛을 빼 저미고,

마늘 생강 얇게 썰어 양념주머니에 넣어 항아리 바닥에 깔고,

살짝 절인 알타리무를 새우등처럼 칼집을 내고 쪽파 갓 더덕 풋고추 홍고추를 박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채우고 밀가루 풀 쑨 국물을 부었지요.

 

얼갈이 삼 겉절이;

마침 며칠 전 벗이 준 인삼이 있어서,

배며 새우젓이며 홍고추며 찹쌀풀을 갈아 만든 겉절이 양념을

절인 얼갈이배추와 수삼 쪽파에 넣고 살살 버물려 바로 상에 올렸답니다.

 

생지황 백김치;

황석어젓을 끓여 체에 거르고 생지황 물 내고,

무, 갓, 실파, 석이버섯, 실고추, 배와 밤, 대추 다 채썰어 소를 만들고,

절여 건진 배추잎 사이사이에 소를 넣었지요.

잘 절여진 겉잎들 몇은 소를 넣어 쌈처럼 말았답니다.

금세 물러지니 어여 먹어야지요.

 

진학과 추업을 위한 수험생 제자들의 소식이 줄을 잇습니다.

2월까지도 그럴 테지요.

배움으로 연결된 인연들로

<대반열반경>에 전하는 석가모니 열반에 들던 한 장면이 겹쳐집니다.

세존이 고향 카빌라바스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 쿠시나가라 외곽 길옆에 있는 한 나무 아래 이르셨더랬지요.

그리고 아난다(아난)존자에게 말했답니다.

“자, 아난다여, 상의를 네 겹으로 깔아라. 피곤하니 좀 쉬고 싶다.”

자리에 앉으신 세존은 곧 아난다에게

“아난다여, 물을 다오, 목이 몹시 마르구나.”

부처가 열반에 들 것을 알아차린 아난다는 고개를 돌리고 목 놓아 울었다데요.

이것을 본 부처님,

“아난다여,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지 않았더냐.”

이윽고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쓰러져 가는 법.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여라.

너희들은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남을 등불로 삼지 말아라.”

가슴 찡한 스승과 제자의 마지막 장면이지요.

그리고 남는 한 마디,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

 

어둠내리는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계곡 길이었습니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 막연히 생각했어요.

샘의 글이 왜 전 같지 않게 느껴질까 하고요.

오늘 몸이 안 좋은데 걸을 일이 있어서 밖을 다니다가

문득 글에서 고통이 느껴졌던 걸까, 떠올랐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어쩐지 말하고 싶어서요.’

사람이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도 고맙지만

어려운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은 더욱 깊더이다.

올 한 해 기대고 살았던 벗이고 후배인 이가 보내온 문자,

목에서 화악 마른 울음이 일었더랍니다.

이리 사람을 기대고 살아갑니다려.

 

오늘은 대배 백배만 한 아침 해건지기였더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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