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사진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계자 당 무려 500장에 가까운 사진들입니다.

홈페이지의 용량을 고려하자면 한 계자에 100여 장 올리는 것을 적정선으로 잡습니다.

일이군요.

자, 152 계자부터!

 

낮, 나무 아래 해먹을 걸고 낮잠을 자기로 합니다.

자신의 게으름을 한껏 용서해주겠노라 한 계자 뒤랍니다.

그런데 해먹을 묶느라 작고 낡은 나무 의자 하나를 딛고 섰는데,

그만 무너져버립니다.

헌데 판 아래 커다란 벌집이 하나.

벌들 정신없이 날고,

얼른 그 판을 저 운동장 한가운데로 던졌지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벌집을 어찌할까 다가가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건드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녹기라도 한 것일까요, 벌들이 모여 매고 간 것일까요...

 

예술가의 사명은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삶에 애착을 지니게 해주는 것,

톨스토이의 저 오랜 신념을 생각해 보는 밤,

김기덕 감독의 오두막을 보았습니다.

영화 <아리랑>에서였지요.

자신의 전 재산 24,000불을 모두 국제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알래스카로 떠났던

(그러나 유타주의 산간에 갇혔던)

크리스토프의 <in to the wild>를 생각했고,

헬리 데이빗 소로우의 오두막도 스쳐 지났지요.

밥그릇, 호미, 고등어, 북어대가리, ‘싶다’...

분노와 절망, 그리고 성찰과 관조, 이윽고 일어난 힘,

김기덕 감독의 트고 갈라진 뒤꿈치가 나를 밀어준 오늘!

 

10여 년 전, 그러니까 시카고에서 머물던 때

김기덕의 영화가 모이던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때 썼던 글이

제게는 사라진지 오래, 다른 이를 통해 닿았습니다.

세월은 흘렀고,

사람은 변했으나,

영화는 남고,

그리고 글은 10년이 지났어도 별로 깊어지지 않은 생의 맨얼굴로 앞에 서더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해안선>에 부쳐

 

2003.04.03. 01:47

 

드디어 <해안선>을 보았습니다.

네, 마침내.

한국을 떠난 뒤의 늘 아쉬움이지만

극장이 아니라 안방에서 본 안타까움 여전했지요.

가끔 한 영화를 극장에서 집에서 다 본 경우

'영화읽기'가 달랐던 경험이 많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역시 논란의 여지 많은 김기덕의 작품이겠다 싶더이다.

어쨌건 시절 좋단 생각은 했지요,

이런 금기의 소재들을 언제 우리 영화에서 다루었겠냐 하는 생각에.

 

저는 이 영화가 남성 폭력 중심의 쇼비니즘영화라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쇼비니즘이 무엇입니까?

광신적이고 배타적인 애국주의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혹여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패트리엇 미사일식 말고

우리가 언제 범우주적 애국주의를 가져본 적 있기나 합니까.

끽해야 국수주의식 애국주의 아니면

외국물 먹은 놈들이 들먹이는 막연한 향수식 애국주의,

삐딱한 주체사상으로 뭉친 반국가 애국주의,

뭐 그런 것 지천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지난 60여년 한미 관계가 어떤 알레고리 속에서 진행됐는지

단 한 줄의 이해도 없이 그저 반미를 외친,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스포츠에 미쳐서, 혹은 죽은 목숨 둘에 눈 뒤집혀서

무식하게 국제관계 생각도 않고 반미를 외치는 무식한 남한사람들

절대 이해 못하겠다고 머리 절래절래 흔들게 하는 애국주의라든가...

아, 그렇다고 삼팔선에 드러누운 김구식 애국주의나,

하얼삔에서 내던진 안중근식 애국주의까지 싸구려로 취급하는 건 물론 아니구요.

저는 결코 이 영화가 애국적 광기에 대한 예찬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적나라한 보여주기일 뿐입니다.

지배와 종속, 권력과 착취, 여성과 남성의 극단적인 이분법의 나라,

이 남한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해놓은 것 아니냐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외려 반쇼비니즘 영화라는 겁니다.

남한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을 한 번 보라 하거든요.

그런데, 그래서, 그의 영화가 애국 광신도로 만든다구요?

아니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음성은 얼마나 냉랭한지요.

니들 봐라, 우리가 어떤 사회울타리에 놓여있나,

이것 좀 보라구, 하는 그 싸늘한 말하기는

우리에게 애국자가 되라고 깃발 날리는 게 아니라

그 깃발 아래 흐느적거리는 우리를 보라 합니다.

알고나 있냐고,

우리가 신물나게 애국지상주의로 살았던 현대사의 한 면을 보여주고

(물론, 현재진행중인)

도리어 껄걸 웃고 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뼈아프게, 뼈아프게 비통해지는지...

그 순간 그만 심하게는 통일주의자, 자유주의자가 되려한다니까요.

 

물론 어떤 의미로, 그의 영화가 쇼비니즘적일지도 또 모르지요.

그러나 그 쇼비즘은 아름다움에 침흘리게 하는 게 아니라

구역질을 유도하지 않습니까.

정말 그가 미학적으로 그리려했다면

(아, 물론 미학의 범주는 추와 미를 동시에 담는다는 것 모르지 않습니다만,

여기서 미학이라함은 과도한 아름다움만들기쯤이 되겠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폭력의 아름다움에 동참케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거든요,

우리는 찝찝해하고

못견뎌하고

영 뒷맛 캥겨 하거든요.

 

그의 말법은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정말 그게 다 무어냐'고

오래 서성이게 합니다.

그는 질문을 던졌을 뿐 어떤 제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또한 되려 우리에게 묻고 싶었을지도 모르지요.

정녕 우리 사회의 광기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그의 제안이라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똑바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

그 광기의 알맹이가 무언가 하고.

 

또 한 편 끼어드는 뱀다리 하나,

혹 이 영화가 쇼비니즘이라더라도

적어도 대한 매일뉴스나

전두환시절의 땡 뉴스보다는 분명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저는 김기덕의 영화를 사랑합니다.

그의 지독한 상징을 정말이지 사랑합니다.

 

한마디만 더,

이 영화에서 김기덕의 이전 영화와는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는 이제

유쾌하게 말하는 법도 터득한 것 같더이다.

그의 다음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정말 기대됩니다.

제목이 맞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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