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4.물날. 맑음

조회 수 930 추천 수 0 2012.11.08 03:15:28

 

 

구름이 좀 꼈으나 맑다고 해도 될 하늘,

그 사이로 가을바람,

그 아래로 꽃잎처럼 날리는 나뭇잎들...

 

위탁교육 사흘째.

아이는 아주 실컷 잠을 잤습니다,

방이 식지는 않았나 잠은 잘 자나 밤새 아이 방을 몇 차례 여닫는 동안

아이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는데도.

이곳에 아이들이 오면 가끔 마치 독기를 빼는 것만 같습니다.

자연스레 잠이 깰 때까지 기다리지요.

아, 어제 아이는 엄마아빠랑 꼭 다시 놀러오겠다 했습니다.

이곳이 이렇게 빨리 또 올 곳이 되다니...

 

늦은 아침을 먹고 또 부침개 타령.

“김치를 너무 많이 먹는 걸.”

“아빠 오실 때 가져오라고...”

그렇게 한바탕 웃으며 세 판째 먹는 아이,

마지막 남은 걸 저가 먹으며,

“역시 나는 물꼬에서 운이 좋아.”

“야, 내가 마음이 넓어 그런 거지.”

“우리 아빠는 마음이 좁아요.”

언제나 부모 팔리는 우리 아이들!

오후에 또 김치부침개 노래를 불렀지요.

“오늘 한 번 먹고 갈 때까지 안 먹을래,

오늘 안 먹고 앞으로 두 번을 먹을래?”

“오늘 당장 먹을래요.”

그래서 또 부쳐 먹었지요.

 

오후, 아이는 감자 깎는 칼로 단호박껍질을 벗겼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소근육 쓰는 일이 조금 어려운 아이에게 좋은 운동이 되고 있었습니다.

“앗!”

“감자 껍질 벗기랬지 손가락 벗기랬나...”

손이 조금 까졌습니다.

밴드 부치고 다시...

제법 진득하게 합니다.

뒤에서 채근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의 흐름이 좋습니다.

 

하루 한 차례 한 시간 상담.

오늘의 주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결혼도 하고 카레이서도 하고 하늘을 나는 배도 만들고 싶다는데,

그것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이야기.

“어른이 되면 차분하게 할 거예요.”

“지금부터 조금씩 몸에 배게 해야지.”

“예, 그럴 게요.”

 

4시 식구들이 다 모여 같이 마늘을 심었습니다,

밭도 패고 돌도 가리고 풀도 뽑고 마늘 넣고 흙 덮고.

“많이 했어요. 언제 끝나요?”

그렇게 몇 차례의 실랑이 뒤 일이 끝날 때까지 함께 했지요.

“네가 심은 마늘을 키워 먹겠구나.”

“노예처럼 일만 시키고...”

“야아, 누가 들으면... 노예가 그래 하루 한 시간 일하냐?”

“알았어요, 알았어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녁 설거지는 아이들이 합니다.

앞치마를 가지런히 잘 걸데요.

“형이 잘 가르쳤구나!”

“역시 나는 빨리 배워!”

형이 이것저것 일상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과 깎는 법이며 사이사이 젓가락질이며 의자 넣는 것이며...

 

어제처럼 저녁 명상을 같이 하고 달골 올랐지요.

달빛 훤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책을 보다 잠들어버린 아이,

비염약을 아직 못 먹었는데...

날적이도 못썼겠다 하고 방을 나오려는데,

보니 저가 혼자 써놓았습디다, 기특했지요.

 

날이 정말 금방입니다.

아이 저도 놀랬습니다.

“오늘 밤 넘으면, 두 밤만 더 자면 가네...”

내일 오후엔 가을 들길을 아이랑 걸어야겠습니다,

가을길 비단길, 이 풍경을 눈에 잘 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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