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9.달날. 맑음

조회 수 810 추천 수 0 2012.11.12 11:29:31

 

산마을에 이르는 길이 온통 공사 중입니다.

끝 마을에서 산으로 첩첩이 막힌 이 골짝에 2차선이 다 무어랍니까.

학교 둘레, 앞마을에서 뒷마을로 이르는 길 쪽 수로도 공사 중.

마을길 공사의 일환입니다.

우리의 달골도 뒤집어져 있고,

온 마을이 그렇게 부산합니다.

 

열다섯 살 아이는 오늘도 유기농 농장으로 머슴살이를 갔습니다.

아이도 곤할 겝니다.

어제는 그 너른 배 밭에서 나온 배 담은 컨테이너를

몇 어른들과 다 실어 날랐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꼭 둘씩 짝을 지어 트럭에 싣는 것을

끝까지 홀로 번쩍 번쩍 들어 실었지요.

“아고고 저러다 허리 다칠라...”

“저도 알아서 해요.”

한주 내내 공사 뒷정리 청소를 했고,

주마다 두 차례 읍내를 나갔다 오고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걸리지요),

주말에 빈들모임을 하고,

그리고 배를 수확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아이 일 시킬라고 학교 안 보낸다고 농을 던집니다.

아주 가끔 그 말이 맞는 갑다 하는 요즘이랍니다.

사람 노릇 하라고, 제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힘을 기른다고

머리로 하는 공부도 중하지만 몸으로 하는 공부도 그 못잖다,

허나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근래입니다.

더러 사람들은 학교 다니는 아이들보다 홈스쿨링 하는 이 아이 팔자가 더 좋다지만

그는 그대로 먹고 사는 문제들에 관계된 고민들로

역시 무거운 10대를 보내고 있지요.

그런 겁니다,

저마다 자기 삶의 무게를 지고 가는 겁니다.

 

“오늘은 뭐 했어?”

농장에서 일을 하고 하룻밤을 묵고 나오는 아이랑 통화를 합니다.

SS(밭에 다니는 그 작은 트럭)로 흙을 날라 닭장 앞을 메웠고,

파이프를 잘랐답니다.

그 자른 파이프로 어른들을 도와 관리사 뒤 창고를 지었다고.

“먼저, 쇠파이프를 사다리에 올라가 위에서 땅에 박아.

그리고 파이프끼리 연결 후, 벽에 못을 박고 반대편 파이프랑 연결하면 골조 완성.

지붕은 나중에.”

 

이제 딴 생각이 좀 스미는 것을 보니

살만한 가 봅니다.

꼬박 하룻밤 하루 낮을 호되게 앓았습니다. 

어제 오후부터 삐걱거리고 요란한 소리 나던 몸이

이 밤에 이르니 좀 나은 거지요.

들썩거리는 여러 일들이 그리 몸으로도 왔던 모양.

 

위기의 순간에 인간은 결코 외부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육체를 상대로 싸운다... 영웅적이거나 비극적인 상황이 겉보기에는 다 똑같다. 싸움터에서나, 고문실에서나, 침몰하는 배 안에서나 인간은 정작 싸워야 할 대상을 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따. 왜냐하면 육신은 온 우주를 채울 때까지 부풀어오르며, 공포로 몸이 마비되거나 아픔으로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 않을 때라도, 삶은 굶주림이나 추위나 불면이나 위장이나 치통을 상대로 순간순간 끝없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한 구절이 떠오르는 것도

순전히 좀 나아지며 고통을 좀 쳐다볼 수 있기 때문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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