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몸 풀고 절명상.

자신, 혹은 타인을 향해 오직 그렇게 절하는 일이 어디 잦던가요.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침 밥상을 위해 은희님이 같이 내려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든든합니다.

좋은 품앗이일꾼 하나 생겼습니다.

 

‘두름손(일을 잘 처리하는 솜씨. 주변.)’.

굴비 두름처럼 가지런히 두 줄로 늘어서서

함께 매끈하게 일을 하며 마음도 닦아보자는 시간.

두 패로 나뉘어 안과 밖에서 움직이기로 합니다.

안에서는 사과잼을, 밖에선 김치광 집짓기.

두어 주 전이던가요, 김치광을 덮던 나무 구조물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마침 빈들에서 새로 만들자 별렀지요.

아직 어린 찬의,

이 같은 모임이면 새끼일꾼들 혹은 다른 어른들이 돌봐주기도 하는데

이번 빈들은 사정이 여의치가 않네요.

품앗이일꾼도 새끼일꾼도 따로 오지 않은데다

큰 아이들도 꼬마아이보다 일에 더 매력들을 느끼는 이번이랍니다.

하여 엄마가 내내 붙어있어야 했지요.

 

사과잼이야 자주 하는 일이고 안에서 하는 일이니

그저 칼질만 하면 되었는데,

바깥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소사아저씨가 나름 나무도 챙겨놓고 했지만

못이며 재료들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못했나 봅니다.

재료며 연장이 시원찮으면 힘만 들고 일은 되지 않고

얼마나 답답했을지요.

날은 차고...

그래도 계속 머리를 맞대고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고...

저러다 아무런 실속 없이 애만 쓰다 마는 게 아닐지...

 

원지가 여기서 지낸 동안의 애쓴 보람인양

사과를 어찌나 잘 썰던지요.

그런데 부모님 오셔서 그 편에 서둘러 서울길 올라

사과잼도 못 실어보냈더랬네요.

멀리 와서 애 많이 썼습니다, 추운 곳에서.

이곳에서의 시간이 아무쪼록 사는 힘에 기여하길.

 

두 차례의 좀 무거운 참으로 점심을 대신하기.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저들끼리 복닥이고,

은희님과 인교샘은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더니

마을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녁, 쓰러진 인교샘.

어제 한밤의 운전도 곤했을 테고.

태수님도 책방에서 책을 보다 노곤한지 살포시 눈을 붙이고,

찬의도 그제서야 밥상머리공연 무대의 제 이불 위에서 살며시 한숨 잠.

 

다시 두름손 오후,

은혜님, 찬의가 자니 당신도 사과잼 해야 한다기

제안한 몇 가지 안을 제치고 다시 사과잼에 몰입한 가마솥방.

아이들은 여전히 저들끼리 이불방과 모둠방에서 깔깔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찬의를 위해 단호박죽을 좀 쑤었지요.

밖의 집짓기는 탄력이 붙었습니다.

면소재지 가서 적당한 못도 구해오고.

“진즉에 그럴 걸...”

곧 나온 감탄들.

“와아...”

사과잼을 불에 올려놓고

안에 있던 사람들도 구경을 나갔지요.

박수!

고래방 벽을 기대며 드디어 뼈대가 세워지고

아, 병근님 엄지의 살신성인이 깃든 집.

우리는 오래 병근님과 진혁님을 기릴 것입니다.

그런데 A/S도 두 분을 부른다?

 

그 사이 아이들, 코빼기도 뵈지 않습니다.

마침 뒤란에서 화목보일러에 불도 넣었더니

찬기가 없어 그런지 양말까지 벗어놓고 놀고 있었지요,

개나리 노란 그늘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고까신마냥.

그런 날이 우리를 살리지요,

아무 걱정 없이 오직 몰입하는 놀이의 세계.

윤기 나는 아이들 얼굴이었습니다.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데,

“제가 뭘 좀 할까요?”

은희님이 부엌으로 와서 묻습니다.

젊은이들이 그러기 어디 쉽던가요.

대학 졸업반이 되어도 그런 말 그런 시근 못내는 이가 태반입니다.

우리 사는 시절이 그러하지요.

그런데 이곳에 첫걸음했는데도 그가 그러니

부모님이 잘 키웠다 싶을 밖에요.

“두 분 다 장사하시니까 할 수밖에...”

나이 열댓 살만 되어도 저 먹을 거 저가 챙길 줄은 알아야지요.

물꼬는 늘

일상을 해나가는 훈련이 교육 범주 안에 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달골 춤명상.

어제는 걸으면서 시작했던 춤명상을 오늘은 뛰면서 열었습니다,

추운 날에 걸맞게 그렇게 땀을 내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고구마가 익어가고...

배가 땡글거리도록 군고구마를 먹고

검댕을 칠하며 인디언놀이를 하고...

근데 우리 건호, 무슨 마음에 걸레질을 시작하고

그러다 춤명상 동반하는 소품들을 엎지르고,

아, 그런 소란들이 겨울 한밤 군고구마처럼 달고 달았더랬지요.

 

오늘은 찬의, 일찍 잠이 들었네요,

아이들의 노력으로.

“쉬잇, 조용히 해.”

그 소리가 더 큰, 아이들의 찬의 깨우지 않기 프로젝트.

“찬의가 깨는 순간 모두 불 끄고 잠자리 가기!”

 

그리고 실타래.

결국 준비한 숙제는 어제 인교샘이 끝이고 말았습니다.

다문화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맞고 그 아이들과 보낸 어느 저녁의 다사로운 이야기.

다시 이어진 건축공사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그리고 사는 마을 이야기.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또 공동체를 만들어 살게 될 것 같은,

그리고 한 때 공동체 실험을 하고 실패했던 이야기들.

 

비 내리고 영하로 떨어진다던 주말인데

푹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모다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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