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우면 덧정 없을 텐데...”
장 하는 줄 알고 이리 좋은 날씨.
아침 일곱 시부터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웁니다.
어머니는 어느새 청청한 무시래기로
국도 끓여두고 볶아도 두셨습니다.
어떤 것도 어머니 손만 그치면 맛난 것이 되고 마는 거지요.
무만 넣은 무나물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니, ‘곤조’ 아나?”
잊었던 낱말입니다.
삶은 고구마를 썰어 말린 것.
아이가 이 날 적 가려운 잇몸을 위해,
플라스틱 비슷한 걸 팔기는 하였으나 그거 안 물리려,
구근 채소들을 잘라 데치고 말려 썼더랬습니다.
특히 고구마는 곁에서 아이를 같이 돌보던 동료들까지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게 곤조였던 겁니다.
생고구마를 썰어 말리면 ‘빼때기’,
그 말은 권정생 선생님의 단편동화로 복구되었더랬으나,
곤조는 까마득했던 겁니다.
아, 곤조...
어머니는 고구마를 삶아 잘라 너셨지요.
“올해는 이걸로 해보자.”
막장을 만듭니다.
원래는 메줏가루에 고춧가루 넣고 보리쌀 삶아 띄워 넣는데
올해는 별스레 했습니다.
“내가 묵고 싶어서...”
시골 장을 갔더니 할머니 한 분이 개떡을 팔더랍니다.
보리를 찧고 나온 겨(딩겨라는)를 씻어 가라앉혀
개떡(누룩이라 해야 하나)을 만들고 불에 구운 것이지요.
요새 어디 그것이 있을까요.
이 어르신들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 어디서 그런 걸 알까요.
그걸 쪼개 바짝 말려 절구로 찧었습니다.
거기 밀을 빻고 빻은 밀을 쪄 엊저녁 하룻밤 띄웠던 걸 섞었지요.
장독대로 갑니다.
날마다 반질거리도록 닦았던 할머니의 손은
그저 전설입니다.
겨우 달에 한 차례나 들여다보나요,
간장을 볕에 달일 때가 아니면.
묵은 간장들을 합칩니다.
여러 해 걸쳐 따로 있던 장들이지요.
장은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아
서로 섞여 싸우지 말고 좋은 장맛을 만들라 어루만집니다.
된장독들도 정리하지요.
재작년 된장은 바닥이 났고,
작년의 고추장 역시 비었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무도 말랭이용으로 썰어놓으셨고,
쌓여있던 풋호박도 오가리로 썰어두셨지요.
돌아서면 벌써 무언가가 되어 있습니다.
손 못 대고 있던 들깨도 씻어 놓으셨고...
오후, 콩을 씻어 삶습니다.
불려 삶으면 좀 수월하나 맛은 덜하다고
씻자마자 바로 삶아 오래도록 뭉근한 불에 끓이지요.
아이가 삶은 콩을 건져 자루에 넣고 밟으면
외할머니는 메주를 다집니다.
저 힘 좋은 아이 없으면 메주도 못 쓰겠다 하지요.
고추장집 한 방에 볏짚을 깔고 메주를 옮깁니다.
내일 같은 과정을 한 번 더.
올해는 두말 반입니다.
삶은 콩을 좀 떼어 바구니에 담아 띄우기도 합니다.
청국장용은 내일 삶은 콩으로 할 것이고,
이건 짠 된장에 섞어 먹을 것이지요.
밤엔 찹쌀로 식혜를 만들었습니다.
달여 조청으로 고아 고추장에 섞을 것인데,
그 결에 한동안 마실 것도 한 솥단지 또 하지요.
사나흘 이리 움직이면 사람들 드나들며 한 해 먹을 장이 다 준비된답니다.
고마울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