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접어들어 흩날리기 시작하던 눈은
차츰 굵어지더니 한밤중 함박눈, 정말 함박눈으로 내린다, 간밤처럼.
달골 공사업자와 씨름.
옹벽 위 절벽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공사를 완료로 보겠는가.
문건도 하나 내밀었다.
세 개로 나누어져 있던 견적(옹벽공사, 수밀 방수공사, 중장비)을
하나로 합쳐 인건비와 자재비로 나누어 정리하고,
실 자재비랑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가를 짚은,
그리고 현재까지의 대금 계산과 앞으로 있을 대금 계산에서 변상과 지체상금률,
그리고 남은 대금을 계산한 것.
“그런데요, 이 상태로 잔금을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좋다, 그럼 하자보증서를 끊어오겠단다.
그럼, 그것 가지고 다시 이야기 하자 한다.
자, 또 다음 걸음을 걸어보자.
굴...
우와, 싱싱하고, 와우, 정말 많다.
당장 초장에 바로 찍어먹도록 상에 내고,
굴국도 끓이고,
이웃 두어 곳에 나눌 몫으로도 챙기고,
얼려서 두고 먹을 것도 몇 주머니로 싸두고,
초장에 바로 찍어먹을 것 좀, 굴전 해먹을 것 좀, 데쳐서 먹을 것 좀,
그런데도 아직도 많고 많다.
“굴젓!”
처음으로 굴젓을 담았다.
굴을 씻어 소금에 간해 두었다가 쌀뜨물을 붓고 무도 채썰어 두고,
하룻밤 그리 재우고
거기 고춧가루와 마늘과 쪽파(없으면 못 넣지. 그러면 있는 대파로) 넣으면 끝.
항아리에 넣어두고 간간이 꺼내다 상에 놓아야지.
고추장집과 된장집이 사람 사는 집 같아졌다,
어르신들 다녀가며 묵는 동안 치워냈더니 더욱.
그래도 황소바람 여전하고 허술하기 그지없으나
이불부터 잘 빨고 청소 좀 하고 사람 온기 있었다고.
집은 사람이 지내야 집이지, 아암.
집은 사람이 살며 치우고 바르고 고쳐가며 사는 게다.
사람 비운 집이 얼마나 쉬 무너져내리던가.
유자차와 사과잼이 넉넉하다.
소독한 병마다 그득그득.
멀리 좀 나누어도 좋으련.
홍천 스승님께는 멸간장을,
고성의 스승님껜 된장을,
그리고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홀로 사는 대구의 젊은 벗에겐
유자차와 사과잼을 보내려 꾸린다.
그런데, 내일 읍내를 나갈 수 있으려나, 이 눈을 헤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