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8.불날. 맑음

조회 수 997 추천 수 0 2012.12.28 09:22:35

 

 

놀란 아침.

하늘과 땅 사이가 쨍한.

추위에 화들짝 놀라서.

그렇게 산마을이 얼었습니다.

내일은 더 춥다네요.

달골에서 이불을 몇 안고 내려옵니다.

계자의 밤을 더 단도리해야겠다고.

계곡에 차를 두고 올랐던 참입니다.

 

특수학교에서 위탁교육생이 와 있습니다.

이틀째.

유자차를 좋아하는 아이.

첫날은 맛이 이상하다더니

혼자도 수시로 타먹고 있습니다.

너무 잦게 먹어서 치워두기까지.

저녁엔 머리를 감겼습니다.

자조기술이 된다고 했는데, 머리는 혼자 못 감는다 했습니다.

저 큰 아이를 어찌 하나 싶더니

오래 그렇게 해온 아이가 자세를 잘 잡아 어렵지 않게 감길 수 있었지요.

가끔 아이는 해우소까지 따라 들어오려고 합니다.

“기다려!”

문고리를 잡고 벌컥 열려고도 하지요.

“왜?”

다른 볼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같이 수행모임을 하는 도반 한 분이 진주에서 왔습니다.

물꼬의 ‘바깥샘’쯤이겠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솟대를 만들겠다는 목적까지 갖고 오셨으니.

엊그제 주말 오신다던 걸음인데

길이 미끄러워 말렸더랬습니다.

김장하던 무렵 거제도의 한 시인이 보내주었던 굴로 담은 굴젓,

맛나다 잘 드셨지요.

 

어른들이 곡주 한 잔 기울입니다.

잠 때를 놓친 위탁 아이도

덩달아 신이 나 어른들과 늦도록 놀았습니다.

어른들이 자신에게 집중해주자

더욱 신바람이 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학교에서 우리 담임선생님은요... 우리 엄마는요... 아빠가요...

우리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었지요.

 

모두 달골 올랐습니다.

“무슨 행군이지요?”

“아이구, 힘드네.”

내일은 아이들과 솟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눈을 헤집고 겨울 대나무 숲을 거닐기도 할 것입니다.

 

며칠 이곳 사는 아이는 팩스를 구하느라 인터넷을 돌아다녔습니다.

좋은 물건을 찾았고, 적당한 가격이었으나

결국 두 곳을 다 접어야 했더랬지요.

우체국이 멀어서, 날이 추워서, 싸서 보내기 번거로워서,

그런 까닭들이었습니다.

(요새는 이런 작은 돈에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뭔가 챙겨 보내는 게 쉽잖은 일이지요.

누군가 그리 보내온 소포가 있다면 고맙기 더해야할 일이겠습니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팩스는 사게 될 모양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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