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15.물날. 맑고, 선선한 바람

조회 수 779 추천 수 0 2013.05.25 04:00:32

 

스승의 날.

그렇군요.

엊저녁 뜻밖에 선배라기 부르기도 한참 나이 많은 선배가

스승의 날이라고 문자를 넣었습디다.

당신 눈에 선생일 수 있어 얼마나 고맙던지요.

좋은 선생, 아니 정확하게 쓰자면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몇 사람이 기억하고 전화하거나 문자를 주거나 선물을 보냈습니다.

잊히지 않아 고맙습니다.

일일이 인사 여쭈지 못하는 산골 농번기의 삶을 이해해주시길.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하며

또한, 우리 삶의 거룩한 안내자이신 모든 스승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 앞에 놓인 삶을 저버리지 않고

하늘처럼 아이들을 섬길 것을 다시 다짐합니다.

거듭 고- 맙-습니다!

 

이른 새벽,

아침잠이 많은 아이를 깨워 밭에 나갑니다.

그게 또 해건지기인 셈이지요.

수행입니다.

엊저녁부터 패던 밭을 마저 팹니다.

어제 해질 녘 고구마순을 놓으러 가니

이건 고구마밭이 아니라 무슨 시금치 뿌릴 밭둑이어

다시 밭 패고 둑 올리자 했지요.

어제도 어둑토록 일했는데

다시 밝자마자 이어간 겝니다.

해가 짱짱하지 않아, 바람도 간간이 불어

점심 때 이르도록 들에 있었네요.

 

점심시간, 해먹을 달지요.

모둠방에도 하나 걸고,

울타리 은행나무 사이에도 걸어둡니다.

한 달 간의 위탁교육 기간에 걸자던 것인데,

이리저리 밀리더니 아이들 떠나서야 걸었네요.

꺼내면서 해먹이며 야외용품들을 보내준 인교샘이 또 고마웠지요.

이곳 삶에서 얼마나 유용한지.

잠시 누워 쉬기도 했습니다.

 

해의 기세가 좀 꺾이자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랑 둘이 다시 들로 갑니다.

“물을 듬뿍 줘야해.”

지나던 마을 상자 형님 부부가 조언합니다.

다 패고 두툼하게 올린 둑에 고구마순을 놓고

아이가 손수레와 삽을 가져와

자신이 틈틈이 만들어둔 거름장에서 거름을 퍼다 부었습니다.

거름내가 어찌나 좋던지요.

색깔은 또 얼마나 찰지던지요.

그리고 물을 듬뿍!

저녁달이 뜨고도 오래,

어느새 마을의 가로등이 켜지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겠다 싶을 때야 밭을 나왔습니다.

내일 이른 아침 거름 한 번 더 얹고 물 한 번 더 주자 하지요.

 

“교장이 나 술 한 잔 줘 봐.”

앞집 할머니 건너와 술 한 잔 하고 가십니다.

외로움이 읽혀져 자주 밥상에 함께 앉습니다.

술이 제일 친구인 당신이지요.

얼굴이 붉어져 있어도 말리기보다 드리게 됩니다.

산마을 들어와 어르신들 여럿 보내드렸습니다.

오래 뵐 수 있길.

 

이장님댁.

공문들을 정리하고 나서는데,

콩 종자가 왔으니 내일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답니다.

우리 마을 반장 류옥하다 선수가,

사실 반은 다섯 개 반이고 그 반마다 반장이 있긴 하나

만만하고 힘 좋은 게 그이지요,

내일 일일이 양을 달아 나누기로 하지요.

 

마을 분이 모종을 몇 개 나눠주셨습니다,

오이며 단호박이며 큰호박이며.

우리 것도 있으나 좋은 종자라면 반가웁지요.

고맙습니다.

호박은 내일 당장 고구마밭 곁에 큰 구덩이 파서 넣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교육청에서 이틀 동안 하기로 한 소방방재시설 공사,

오늘 내일 하기로 했는데,

오전이 다 가도록 소식 없이...

전화 넣으니 일이 생겼다고 내일 들어오겠다네요.

“토요일 하고...”

아, 쇠날은 초팔일이군요.

“그런데, 공사를 늘여놓고 하루를 건너면...”

“그리 복잡하지 않으니 괜찮을 겁니다.”

 

소사아저씨의 부산행에

조카 상민님이 와서 동행합니다.

22년 동안이나 당신 집을 다른 이가 유용해서 써왔다는데,

이제 그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 계시지요.

속이 속이 아닌 시간을 일 년 여 보내고 계셨더랬네요.

끝이 보이기는 하는지...

사는 일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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