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여느 날처럼 샘들의 티벳식 대배 백배를 시작으로 아침을 엽니다.

이어 아이들의 해건지기.

오늘의 셋째마당은 큰형님느티나무까지 업어주기.

비 떨어지고 있어 고래방에서.

이제 제법 아침이 정돈되어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자연을 따라 만든 동작 하나하나를 잘 따르고 있습니다.

시간, 그거 무섭지요.

집에서도 아이들이 날마다 이리 아침을 열면 얼마나 좋을지요,

좇기듯 후다다다닥 일어나 혼을 쏙 빼는 아침이 아니라.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대배를 오늘로써 6개월간 떠나보낸다.’(수연 형님의 하루정리글에서)

다음 겨울에도 오고야 말겠다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수연 형님.

기표샘 말마따나

“아니 도와주러오면서 돈까지 내고, 일하고, 거기다 경쟁률까지 세고...”,

그런 새끼일꾼 자리인데 말입니다.

누구는 여기 올라고 부모님께 전교 석차를 다섯 손가락 안으로 걸기도 한다는

우리 새끼일꾼들!

 

이번 계자는 반찬들을 넉넉히 보내주셔서 부엌이 좀 수월합니다.

어떤 계자는 부실한 반찬으로

밥바라지들이 더운 날씨에도 연신 반찬을 해야 했더란 말이지요.

마음 더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밥상은 감자야채샌드위치.

올해는 우리 농사에다 마을에서 여럿 댁들이 나눠주신 감자들이 넘칩니다.

볶아도 먹고 쪄도 먹고 삶아 으깨도 먹고 조림으로 찌개로...

 

어둔 오전입니다, 비는 멎었으나.

보글보글 2.

칼국수와 비빔국수와 잔치국수와

핏자와 만두와 볶음밥을 만들기로 합니다.

아이들은 저 하고픈 방을 찾아 수강신청을 하고.

 

핏자: 재이 현진 동윤 건호 지호

현진이와 동윤이와 건호는 반죽을 열심히 치댔고,

모두 심부름도 척척,

다른 방에 음식을 나눠주는 것에서도 너그러웠다 합니다.

 

잔치국수: 정기 재민 큰진희, 선화, 재민

정작 진행하는 샘은 잔치국수도 라면처럼 끓이면 될 줄 알았다던가요.

“고명도 만들어요.”

아는 것 많은 정기,

그런데 넘치는 의욕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쉬 스러져버리고는 했지요.

국수가 잘도 삶겨

면발만 건져먹어도 맛이 있었답니다.

 

비빔국수: 가온 재혁 강현 규민 태경

유난히 사고뭉치집합소였다는 오명을 안고 시작한 방입니다.

음, 다들 목소리 좀 높은 녀석들이군요.

하여 동현샘, 목에 힘 좀 넣었지요.

그래서였던 걸까요,

심부름도 곧잘 하고 싸울 일도 없이 그럭저럭 요리가 완성 되어 가는데,

아뿔싸, 다른 방의 음식이 도착하면서부터 다투기 시작했다지요.

먼저 먹겠다고 덤비다 엎지르기도 하고...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우리 사내아이들은 자주 그러합니다.

그게 또 그들의 재미인가 봅니다.

 

김치볶음밥: 수인 승희 지인 유란

아이들이 서로 하려는 모습이 신기했다는 예비교사 다연샘.

치즈가루 몇 점에 아이들 확 반해버린 볶음밥이었습니다.

 

만두: 희정 작은진희

시간도 오래 들이고 노력도 많이 기울이고 아이들도 열의를 다하고,

그런데 맛이 좀 안 따라 주었다는 만두방.

그래도 마지막 판은

맛으로나 모양으로도 꼴새를 갖춰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지요.

하다보면 좀 나아진단 말입니다, 아암요.

 

그리고, 계윤이가 반죽을, 다경이가 국물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갔다는 칼국수.

 

보글보글방의 그 많은 설거지는 다른 끼니의 달리 샘들이 합니다.

전담자가 하나 나서고 먼저 방을 정리한 샘들이 손을 보태지요.

새끼일꾼 해찬 형님이 손 번쩍 들고 선발자가 되었습니다.

‘요리저리 기웃대며 구경하고 손을 보탰다. 잔치국수, 피자,, 비빔국수, 칼국수, 볶음밥 전부 맛있었다. 만두도 처음엔 망하나 싶더니 결국에는 실패를 딛고 성공을 이뤄냈다. 보는 내가 더 기뻤다.’(해찬 형님)

 

갠 오후.

쇠날까지 내내 비 온다 했지만

그리 말라준 하늘입니다, 고맙습니다.

연극놀이,

종합예술이고 공부의 총체이고 조율의 극치인.

무대에 오르는 마지막 공연물의 완성도에 집중하기보다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 과정을 익혀가는 시간.

분장의 재미도 한 몫이지요.

그런데, 여학생들, 샘 하나가 가진 화장품의 종류들을 줄줄 욉니다,

듣도 보도 못한.

옛 이야기를 세 장면으로 나눠 모둠들이 하나씩 맡아 이어달리니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지요.

무대 배경도 그리고, 소품도 준비하고...

생기발랄, 그 과정들이 딱 그러하데요.

조명 켜고 음향도 동원해서 무대에 올린 연극은,

한 시간의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어지지 않으리 만치

잘 짜여져 있었지요.

맡기는 만큼 하는 아이들이지요.

날마다 이곳에서 그러고도 날마다 놀라고 감동하는 아이들의 세계.

그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창의력과 특이한 발상이 엿보인다. 같이 생각하고 놀고 웃으니까 정신적 피로가 그때만큼 사라졌었다.’(수연 형님)

 

춤명상.

아이들이 별스레 재미를 느낄 것 아니지만

이런 경험도 하면 좋으리라 하고 저녁 명상을 춤으로 합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 그 음악에 뜻을 싣고 몸도 끌어보는 시간.

그러며 깊이 자신에게 침잠해보는 거지요.

가운데 놓인 소품이 우리들의 춤명상을 또 잘 끌어주었습니다.

 

대동놀이.

물꼬축구!

몸 바쳐서 달리는 샘들, 기를 쓰고 좇아다니는 아이들,

목 바쳐 심판보는 여자 샘들,

와, 모두 아주 무서웠습니다.

그예 기표샘 땅바닥에 팽개쳐져 어깨를 다치고 말았네요.

‘대동놀이는 역시 아이들과 노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고 매일해도 즐거운 시간인 것 같다.’(다연샘)

내가 즐거워야 아이들과도 즐거울 수 있을 테지요.

샘들이 신나서 아이들이 더욱 신명난 夜단법석이었더랍니다.

 

계자를 꾸려가는 샘들의 뒷배 노릇은,

밤이면 기표샘과 남자샘 하나가 짝을 이뤄 아이들 뒷간 똥통을 비우고,

끊임없이 아이들이 변기에 튀긴 오줌물을 닦아내고,

세면대 아래 얼룩진 물기를 닦고,

부엌바닥을 맨발로 편히 다니도록 반질거리게 걸레질,

아이들이 이동하는 공간마다 먼저 가서 혹은 뒤에 남아서 쓸어내고,

빨래를 돌리고 널고 걷고 개고 찾아주고...

보육와 교육 그리고 일상이 동시에 돌아가는 거지요.

이곳에서의 교사는 그런 존재입니다,

칠판 앞에서 가르침을 전하는 이가 아니라.

 

아이들 머리 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준 뒤 가마솥방에 모인 샘들,

하루재기를 하고 낼 오를 산오름을 위해 여벌 옷가지며 약품이며 챙기고...

‘아이들 이불 깔면서 아이들이 곧 집에 가게 돼서 좋지만 친구들과 쌤들과 헤어지기는 싫다고 해서 감동받았다. 겨울에 꼭 와서 다시 만나자고 하는 아이들 덕분에 피곤했지만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다.’(한솔샘)

‘끝으로 가니까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점점 커져서 평소에는 잘 받아주고 놀아주던 것이었는데도 짜증나서 표출하고 그랬던 것이 아쉽고 조금은 한심했다.’(수연 형님)

‘정신적 스트레스 극에 달아 스토리를 얼른 대충 짜고 계속 멍때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이 다투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윽박을 지르는 둥 그동안 나의 모습과는 다른 행동을 많이 한 날이었다.’(동현샘)

24시간 아이들과 전면적으로 만나는 일이 쉽지 않지요.

교사가 되려는 이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연수의 장입니다.

처음 잘하기는 얼마나 쉬운가요.

서서히 피로가 쌓이고 잠도 모자라고

‘자기’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게 내 모습이란 말이지요.

우리 끊임없이 그걸 들여다봅니다.

‘몸이 느려지던 하루. 그래도 돌아보니 이만큼 지나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 중. 지나간 시간, 아직 남은 시간 다 고맙고 소중한 시간인 것 같다.’(연규 형님)

가마솥방에서 올라온 일지에는 이리 씌어있었지요.

‘밥바라지를 며칠간 하다 보니 정리병이 생긴 것 같다. 일을 끝내고 쉴라하면 또 다른 할 일이 보이고 계속 일을 찾아서 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것들도 다시 정리하고 치워야만 할 것 같다.’(화목샘)

누군가 화목샘을 괴롭히면 곁에서 왈,

“야아, 화목샘한테 그러지마. 너네 밥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밥이 권력입니다요, 하하.

 

그리고 물꼬라는 이 공간을 찬찬히 훑어봅니다.

‘늘 느끼지만, 물꼬는 참 좋은 공간인 듯합니다. 매학기 시즌에만 볼 수 있어서 서먹할 수도 있겠지만, 물꼬에 와서 만나면 오래 봐왔던 인연마냥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점...

참 고맙고, 사랑합니다.’(희중샘)

무엇이 있어 이 젊은 사람들은

중한 방학을 예 와서 그리 보내고 있는 걸까요...

이 시대 누구보다 바쁜 중고생들이 무엇 하러 잘 써야 할 방학을

예 와서 손발 보태며 보내고 있는 것이더이까...

이러니 물꼬 일이 어찌 일이 되지 않겠는지요.

연대... 그 뜨거운 이름...

그리고, 아이들은 바로 그 기운을 업고

자연이 주는 돌봄과 함께 자유학교 물꼬에 있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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