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의 대배는 어제보다 수월한 느낌으로 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하다보면 숙련이 되는가보다.’(새끼일꾼 해인 형님의 하루정리글 가운데서)

이른 아침부터 날이 여간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 산골이 이럴 진대 아래 마을들은 오죽하려나요.

그래도 샘들의 아침수행은 계속됩니다,

여전히 우리들은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비 오듯 땀이 흘렀지요.

 

아이들 ‘해건지기’.

재이가 일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여기서 2주를 내리 보내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활동량일 테지요.

곤할 때가 넘어도 한참 넘었다마다요.

해건직의 두 마당을 끝내고 세 번째 마당은 ‘자연안기’로

학교 뒤란 쪽 댓마 한 바퀴 돌기로 합니다.

여느 계자라면 달골까지 걸어 올랐겠지요.

날이 보통 아니다 싶어 산책거리를 줄인 것.

길섶에 나고 자라는 것들 보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람 말고 다른 존재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네요.

1년 정윤이가 나령샘 곁에,

6년 여경이가 꼭 주인샘 옆에 붙어 다닙니다.

여경이가 아직 아이들 속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의 힘으로 발걸음을 떼어보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간밤에는 정윤이의 베개를 여경이가 가져갔고,

어린 정윤이는 가만히 있었던 일도 있었다 하고,

여경이가 다른 친구들과 같이 할 때

자기 몫이 적어질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주인 형님의 관찰도 있었습니다.

여경이의 배경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가,

따로 한 주쯤 위탁교육을 와서 머물며 얘기를 좀 나눠보았으면 하는 욕심이 일데요.

뭐가 서러웠는지 울기도 하였다던 여경,

사춘기의 격랑을 타고 있는 걸까요...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

소박한 밥상머리공연은 저녁으로 미뤄집니다.

샘들이 무대에 서기로 한 날.

 

‘보글보글 2’.

그림동화 책을 같이 하나 읽고

오늘은 만두를 만들기로 합니다.

앞의 계자는 갖가지 음식을 만들었는데,

오늘은 고전적인 메뉴로 만두빚기와 만두피 밀기.

‘가지런한 만두방’; 상협, 선재, 상원, 지훈, 여경, 무량

반석이도 있었으나 ‘마음 넓은 보자기’(만두피 공장)에 스카웃됐고,

정윤이는 모둠을 바꾸고 싶어 하여 전학을 갔다 합니다.

까닭은, 자기는 다른 이유를 들먹였지만 여경이와의 문제입니다.

샘들이 적절하게 슬쩍슬쩍 개입하고 있습니다.

애고 어른이고 사람 사이의 일이란 게 참...

특히 여자들 사이의 감정선은 참말 어렵습니다요.

여경이가 자주 찾는 주인 형님의 곁에 정윤이가 있기라도 하면

여경이의 반응이 조금 날서고는 했지요.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어설프게 무슨 말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때로 저들이 저들의 일을 더 명확하게 압니다, 당연하지요, 당사자이니까.

다만 제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할 뿐.

만두 빚는 일이야 무난하게 흘렀더라나요.

그럼 그렇지요, 저학년들이 다른 방으로, 그러니까 고학년들이 이 방에 다 모였으니까요.

‘무량이와 상엽이는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했고 상원이와 선재, 여경이는 뒤에서 지켜보다 제안하자 같이 했다.’(도영 형님)

‘상협이가 말이 많았다. 지훈이가 큰형이었는데 알아서 조절하고 양보해가며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해인 형님)

칼질하고파 엉덩이 들썩이는 아이들,

양파는 맵다고 샘들이 하고 나머지를 아이들이 잘 나눠 썰고 다졌다 합니다.

상원이가 소극적이긴 했으나 김치를 잘 썰어주었다 하고,

장현샘이 전하기를 선재는 칼질을 않으려 했다네요.

여러 샘들이 여경이의 자기중심적 면을 조금 우려했습니다.

‘칼질이 재밌으니 계속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장현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모습이 벽이 되고 있는가 살펴보는 중입니다.

‘만두피를 만들 때 다양한 형태가 나올 줄 알았는데,

긴 만두와 둥근 만두 두 가지 모양만 나온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장현샘)

만두보다 만두소와 비벼서 볶은 비빔밥이 훨씬 맛있었다는 후문.

 

‘참한 만두’방에는 윤성 은새 건호 재이 진이 정윤 혜준이가 있었습니다.

만두소를 만들 때 윤성이와 아이들 사이 다툼이 일고,

시작이야 다른 친구 일을 마음대로 뺏고 소리 지른 윤성이로부터였습니다.

아이들이 대단했지요, 그 과정에 같은 반응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같이 뭔가 최선의 방식을 찾아보려 머리 맞댔습니다.

그럴 땐 저것들 안에 뭐가 들었나 싶어

그 커다란 세계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고

교육이 무색해지고

어른인 게 퍽 어줍잖은 자리가 되고...

건호가 혜준이를 잘 챙겨주고 있습니다.

한 치도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것 같은 그 건호 말입니다.

“지난겨울 쟤네들 나중에 커서 결혼 한다 그랬어.”

2년 건호, 3년 혜준입니다요.

그때에 이르면 저들 주례도 제가 서게 되는 건가요, 하하.

‘역시 역할을 나누어 재료도 썰고 다지고 하니까 모두 집중하였고 화목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도중 너무 의욕이 넘쳐 싸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쌤들께서 잘 어루만져 주시고 화해시켜주셔서 맛있는 만두도 먹고 좋은 마무리를 했다.’(해인 형님)

 

‘마음 넓은 보자기’; 반석 미래 민서, 그리고 도언샘과 상규샘, 옥영경

스카웃 해온 반죽이 반석이가 우리는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반죽을 잘하는!

그 반죽 길게 떼어내 다시 칼로 잘라 하나의 피로 밀고,

아니면 넓게 밀어 주전자뚜껑으로 찍어내기도 했지요.

서로 엉겨 붙지 않게 마른 밀가루를 잘 묻히고

생산자, 검수자가 생기고, 배달부가 생기고...

단순노동은 사유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것도 명상인 게지요.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이곳에 왔지? 하는 마음.

이를 계기로 하루 종일 물꼬에 와서 얻는 것을 생각해보았는데 확실한 것 하나는 책임감을 얻었다고 깨달았다. 밖에선 혼자 다닐 땐 싫고 무서워하던 벌레들도 나한테 의지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곧잘 잡고, 식사 때가 되면 부엌에 가고, 하는 일들을 통해 살면서 갖게 될 책임에 대해 배우게 된 기회인 것 같다.’(희도샘)

그런데, 만두가 와야 말이지요,

아직도 만두방들에서 소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계획대로는 사온 만두피로 저들이 먼저 만두를 빚어 이 방까지 멕이고

그 다음에 빚은 만두피를 그 비용으로 가져가는 것.

해서 만두피 밀다

우리끼리 부엌에 남아있는 만두 속재료들로 소 만들어 만두 빚고 쪄먹고,

그렇게 배부르고 나니 칼국수를 해먹자던 마음도 사라졌고...

만두를 빚는 날이면 만두피 방에서 칼국수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말입니다.

 

‘연극놀이’.

연극을 위한 예비모임 시간이 연극놀이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할까, 어떤 얘기를 할까 들로.

옛이야기로 하기로 정했고, <토끼와 거북이>로 좁혀졌고,

두 모둠이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눠 맡아

연극을 이어 붙여 완성하는 걸로.

그러면 다시 모둠에서 배경을, 그리고 배역을 정하고 연습을 하고,

분장하고 소품을 준비할 것입니다.

1막은 1모둠이.

윤성 혜준 은새 지훈 선재 반석 정윤이 가 있습니다.

윤성이가 집에 보내 달라 울었습니다.

자기 기분이 좋지 않으니 폭력적 성향이 다시 올라오지요.

‘반석이가 윤성이를 걱정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장현샘)

반석이, 이 친구 참 따뜻한 친구입니다,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그 마찰에 지훈도 반석이와 함께 조정자로 나서고 있었습니다.

‘지훈이와 반석이는 나이에 비해 굉장히 어른다운 모습과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동시에 보여주어 감탄’(중연샘)

아이들은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들의 선생이 그들 아니더이까.

‘오늘은 남자 아이들의 숨은 능력에 놀랐다.’(재언샘)

공연무대에선 샘들의 몸 바친 헌신이 늘 돋보입니다.

‘연극놀이도 아이들과 어울려서 어떻게 하면 극을 살릴지 내가 오히려 제일 욕심낸 것 같다.’(희도샘)

많이도 웃었습니다.

하면서, 보면서, 연극은 얼마나 훌륭한 공부의 장이고 즐거움의 장인지요.

종합예술이고 통합교과!

 

2막은 2모둠에서; 무량, 진이 상원 상협 여경 민서 미래 

건호의 부상투혼이 연기상을 받아 마땅했던.

배가 엄청 아파 누워있던 건호, 무대에서 열연을 펼쳤지요.

연극을 마치고 만져보니 체했습디다. 따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마솥방으로 가서 ‘약 주스’ 만들어주었더니 마시고 뚝딱 좋아졌네요.

아이들이 그게 맛있어서 자주 아프기도 한다나요, 어쩐다나요.

재이도 배가 아팠습니다, 식탐이 좀 있는 그입니다.

살살 문지르니 좀 가라앉았지요,

소화제를 먹일 정도는 아니었고.

 

저녁밥상에서 ‘밥상머리공연’ 있었습니다.

도영이 형님이 기타치고 샘들 몇 붙어 같이 노래했지요.

모두가 아는 노래여 대합창으로 이어진.

훈훈한 시간이었네요.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바로 이런 소소함들이 우리 생을 채우노니.

그래서 무슨 큰 업적을 이루지 않아도 우리 생은 개개로 의미 있는 것일지니.

 

‘한데모임’.

넘치는 노래에 손말도 익히고,

하루 돌아보고 의논도 하고 알릴 것도 전하고 하고픈 말하고...

오늘의 대동놀이는 본관에서 앉아서 하는 손놀이로.

“오늘은 ‘토끼와 거북이의 날’, 대동놀이까지 짝을 이뤄볼까요?”

연극놀이도 그러하였더랬지요.

손놀이를 하며 오달지게 웃었더랍니다.

 

이어 산오름 안내.

뭐 이 계자도 다 끝났습니다.

오늘 자고 내일 산오름 다녀오면 다음날 짐 싸서 나간단 말이지요.

산오름은 계자 모든 활동의 결집체이기도 하지요.

“동네 뒷산에 올라서도 다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8,844m의 에베레스트도 거뜬히 다녀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차이가 뭐지요?”

무엇보다 그 준비에 있겠습니다.

“불 끄면 싹 자고, 깨울 때 싹하고 일어나고...”

복장을 당부하고, 나머지는 샘들이 오늘밤 할 준비들이지요.

 

이곳에서의 교사는 온 마음이야 당연하고 온 몸으로 아이들을 만나지요.

아주 몸을 바칩니다.

아이들은 용케 순한 선생이나 처음 온 선생을 알아

올라타고 기어오르고 난리랍니다.

그래놓고 아이들은 또 샘들 안마를 하며 얼르지요.

여우들 같으니라고.

아이들은 그래서 사람이 아닙니다. 동물입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자기편이 누군지, 그래도 되는지 아는 게지요.

물꼬 초임교사가 많은 이번 계자,

샘들 몸이 아주 곤죽이 됩니다.

저들도 생각이 없지는 않아 한데모임에서

“샘들한테 너무 했나”(혜준) 싶더라나요.

 

성진샘은 든든한 밥바라지이고 희도샘은 좋은 조력자입니다.

부엌의 안정감이 계자에서 미치는 영향이 여간 크지가 않지요.

일단 전체를 진행하는 제게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도 지대합니다.

밥바라지가 괜찮아야 계자도 괜찮더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모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시며 귀한 한 주 휴가를 예서 보내고 있는 성진샘.

(이맘때는 병원이 이렇게 내리 며칠을 쉬기 어렵다지요)

쇠날 돌아가자마자 야간근무에 들어가셔야 한다지요.

뭐라도 돕고 싶었다 했습니다, 잘 쓰이고 싶다셨습니다.

이러니 우리가 물꼬 일을 어찌 신명내며 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그를 통해 또 배우는 한 계자입니다.

‘밥샘 진짜 밥 잘하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양을 많이 하시면 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전에 엄마가 밥바라지샘으로 오고 싶다고 했었는데 더욱 노력하셔야겠다고 생각했다.’(해인 형님)

이곳에서의 밥은 하는 자의 실력이 아니라 먹는 자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마당 몇 번 오가면 하루해가 지는 이곳에서

무엇인들 맛나지 않을까요,

또 기꺼이 쓰이기를 각오한 이들이 차리는 밥상이

어찌 살이 되고 피가 아니 될 수 있을지요.

 

삶은 끊임없이 균형일지니

가르치는 일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받아들여준다는 것과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 사이에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요.

교사의 고뇌는 거기 있고,

그 길을 잘 찾아가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량일 것.

 

‘진짜 평화로운 하루였다.’(희도샘)

그렇게 우리는 짧은 이곳 삶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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