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하도 푸르러 선돌바위 앞에
앉아 밤새도록 빨래나 했으면 좋겠다
흰 옥양목 쳐대 빨고 나면 누런 삼베
헹구어 빨고, 가슴에 물 한번 끼얹고
하염없이 자유형으로 지하 고성소까지
왕복했으면 좋겠다 갔다 와도 또 가고
싶으면 다시 갔다 오지,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 가운데서
벗이 이성복의 ‘추석’ 전문을 보내왔습니다,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곱씹으며.
이성복의 ‘추석’을 읽으니 백석의 ‘고향’이 따라 나오고
고향은 김창균의 <먼 북쪽>을 불러주었습니다,
먼 북쪽에서 백석과 함께 만주를 걷고
뻥튀기 장수가 지나가고
도배하는 부부가 있고
오래된 앵두나무와 암소 한 마리,
그리고 그곳은
‘하루 종일 발음해도/ 닿지 못하는/ 닿아도 금세 사라지는/’,
‘거란, 여진, 이런 이름들과도/ 어쩌면 가까이 있었을 것만 같은/ 그 머언 먼/ 북쪽’
화진포에 이르는.
아침, 추석차례 지내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졸고 다시 먹고 치우고,
그리고 물꼬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명절을 예서 쇠는 이들이 몇 들어오지요.
아, 온달!
하늘 한가운데 배처럼 오른 보름달 보며
이성선의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를 생각했습니다,
‘문을 열면 언제나/ 거기 달이 떠 있지/
그에게 차 한잔 대접하듯/ 이 시집을 나의 평생친구/
달에게 바친다’는 자서로 시작하던,
그리고 손수 쓴 ‘벌레’ 초고가 인쇄 돼 있던.
꽃에는 고요한 부분이 있다
그곳에 벌레가 앉아 있다
: ‘벌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