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8.나무날. 맑음

조회 수 856 추천 수 0 2013.12.16 00:22:56

 

이른 아침, 아직 눈 내리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쉬지 않고 내리던 눈입니다.

가마솥방 뒤란 계단의 눈을 쓸어내는 소사아저씨의 비질 소리를 들으며

수행방으로 가서 대배 백배로 여는 아침.

“오늘 제가 대표기도 했습니다요!”

어제 눈발 날리는 학교 마당으로 들어섰던

지리산의 세 어르신들 신원스님과 오도사님과 법린샘,

아침 밥상에 앉으셨지요.

 

늦은 아침, 눈이 멎고

대전 나가는 마을 어르신 차편에 오도사님 먼저 떠나시고,

신원스님과 법린샘이 뒤란 장작을 팼습니다.

와, 스님 장작 패는 솜씨가...

한 도끼질 하신대서 얼마나 하시길래 싶더니만

아, 입을 뻥긋 못하겠는...

신원스님은 도끼로 장작을,

법린샘은 논두렁 오정택샘이 후원하신 유압도끼를 개시하여 나무를 쪼개시고,

소사아저씨는 그 나무들을 쌓았습니다.

도끼자루가 둘이나 부러졌으나,

이미 길은 눈 다 녹아 면소재지 나가 물푸레나무를 구해왔댔지요.

그런데요, 눈발 기세에, 그것도 그늘진 북쪽 뒤란에서 무슨 일이 되려는가 했는데,

눈 멎고, 해나고, 바람 멎고,

늘 고마운 하늘,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오랜 병마를 거친 법린샘,

먼 길 와서 몸에 탈이 나 잠시 누웠다가 먼저 지리산으로 돌아가시고,

신원스님은 당신 뱉은 말 주워 담겠노라며 끝까지 장작 다 패놓고 가신다

하룻밤 더 묵는다셨습니다,

내일 오전이면 끝이 나겠다고.

딱히 도끼질 하는 이가 없어 올 겨울은 또 어이 뒤란 불을 때려나,

큰 아이들이고 남자 어른들이 나래비로 서서 댓 차례씩 도끼질을 하며

도끼자루 한가득 부러뜨리겠네, 그리 그리고 있던 장작일이더니

또 이렇게 오셔서들 자리를 채워주십니다려.

물꼬 복이려니, 물꼬 기적이려니.

 

호열샘의 연락.

초등 4년 때 무열이 따라 와

긴 세월 아이로, 새끼일꾼으로, 그리고 품앗이일꾼으로 손 보태고,

그들 나이가 아마 스물 일고여덟 되던가요,

겨울 장작불지킴이 우리 기표샘 미국 가 있는 사이

그 자리 누가 지키나 싶더니 경찰인 호열샘이 휴가기간을 그리 잡는다 합니다요.

참 기적 같은 물꼬 삶이려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3024 2013. 2.10.해날. 흐림 옥영경 2013-02-21 858
3023 2010. 6.20.해날. 꾸물꾸물 옥영경 2010-07-06 858
3022 2017. 8.28.달날. 흐림 옥영경 2017-09-29 857
3021 2017. 8. 7.달날. 맑음 옥영경 2017-09-01 857
3020 2017. 7.20.나무날. 쨍쨍, 그러나 말랐다고 못할. 폭염 옥영경 2017-08-30 857
3019 2015.12.11.쇠날. 비 내리고 개고 옥영경 2015-12-29 857
3018 2015. 6. 8.달날. 비 한소끔 옥영경 2015-07-11 857
3017 2015. 4. 1~2.물~나무날. 흐리다 이튿날 비 옥영경 2015-04-29 857
» 2013.11.2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12-16 856
3015 2010. 1.18.달날. 맑음 옥영경 2010-02-02 857
3014 2019. 4.17.물날. 맑음 옥영경 2019-05-12 856
3013 2017. 8.27.해날. 구름 몇, 그리고 맑음 옥영경 2017-09-29 856
3012 2017. 4.17.달날. 비 옥영경 2017-05-10 856
3011 2017. 4.13~15.나무~흙날. 맑음 옥영경 2017-05-10 856
3010 2010. 6.23.물날. 맑음 옥영경 2010-07-12 856
3009 2010. 6. 5.흙날. 맑음 옥영경 2010-06-12 856
3008 2017.12.12.불날. 맑음 / 장순이 가다 옥영경 2018-01-15 855
3007 2016 여름 어른계자 여는 날, 2016. 8.13.흙날. 맑음, 전국 사흘째 폭염특보 옥영경 2016-08-26 855
3006 2013 겨울 청계 닫는 날, 2013.12.29.해날. 맑다 흐려가는 하늘 옥영경 2014-01-04 855
3005 2016.11.23.물날. 흐림 옥영경 2016-12-12 85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