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30.흙날. 맑음

조회 수 853 추천 수 0 2013.12.16 00:24:42

 

안에서는 남도의 아이 외가에서 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밖에서는 지리산 어르신들이 다녀가시며 패놓은 장작을 쌓았지요.

 

늦은 점심, 손님이 찾아들었습니다.

서울에서 남도의 처가로 김장을 하러 가는 선배 상찬형님.

한 사람의 관심과 실천이 주위를 어떻게 환기시키고 바꾸어주는가를 보여준 사람,

존경합니다.

이 말은 그의 모든 삶을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지요.

그의 모든 삶이 다 그러하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의 어떤 부분을 말함이지요.

그건 또 그의 다른 부분이 그렇지 않다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존경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

부디 쉬 사람에게 좌절 않기를, 절망 않기를, 실망 않기를.

상찬샘, 또 바리바리 싸서 오셨네요.

산골서 뭐든 귀하다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는 당신입니다.

이번엔 갖가지 빵들; 호빵에서부터 호떡, 식빵...

가게를 아주 다 털어 오셨던 갑습니다.

논두렁이고 물꼬의 학부모이며 역사모임을 같이 하는 동지이고 선배입니다.

아, 물꼬의 그 번쩍이는 대형 드럼 세탁기도 지난겨울 당신이 보내왔던 것.

두고두고 고맙습니다.

 

학교 앞으로 왼쪽 동산 끝자락에 곶감집이라고 있습니다.

물꼬가 상설학교로 문을 열었던 해 기숙사로 쓰며 그리 불렀지요.

거기 학부모들도 살았고,

서울 살던 주인도 고향 들어와 한동안 거기 살았고,

또 누군가 이사를 와서,

그리고 다시 낯선 이가 들어오고 달포.

대체의학을 하시는 분이랍지요.

구하면 앉아서도 스승을 찾습니다.

몸에 대해 늘상 공부를 해왔고, 하고 있습니다.

또 공부하는 기회가 될랑갑다 싶습니다.

저녁답에 찾아가 인사 나누었고,

밤 학교에 내려와 차 한 잔 드시고 돌아가셨지요.

 

사택 된장집과 고추장집을 이제야 청소 좀.

겨울 닥치고, 사람들 몇이나 묵어갔는데,

예정에 없던 터라 준비도 없이 맞았고,

묵은 먼지, 혹은 묵은 때, 너저분함들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무성의한 듯 맞아야만 했던 이 얼마동안이었습니다.

본관 복도에 커튼도 달았습니다.

그거 하나만 덧붙여도 한기가 훨씬 다른.

 

한밤에 들어온 전화.

한 건축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 사이의, 이 역시 공동체일 테지요,

하소연을 듣습니다.

한동안 인연이 있어 그 현장을 드나들었던 탓에

내부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이 먼 곳으로 건너오고는 하지요.

마침 학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일구고 사는 한 곳에서 온 소식지를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한 고등학생의 글,

“공동체 졸업을 앞둔 요즘 난 공동체에서 산다는 건 뭘까, 공동체란 무엇일까를 자주 생각한다.”

60여 명의 사람이 같이 살고 있다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부딪히는 것도 많고 피해보는 일도 생기게 되고 신경 쓰이는 일도 있을 테고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다.

내 생각엔 저마다의 목표나 혹은 이익이 있기 때문에 함께 모여 사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공동체에 오래 남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떠나가 버렸다. 더 이상 이 공동체에 남아 얻을 수 있는 게 없어서 떠나간 것일까?”

같은 경험을 가졌던 물꼬의 시간도 있어

잠시 마음이 떨렸습니다.

왜 오래 남아 살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을까,

그에 대해 한 가지나 겨우 말할 수 있을까요,

올 연이 되어 왔을 테고, 갈 때가 되었으니 갔을 거라는 것.

필요하면 오고, 필요가 없으면 또 떠나는 것일 테지요,

무어라 무어라 다른 까닭을 갖다 붙인다 해도.

그리고 이리 말할 수는 있습니다,

계속 공동체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경이롭다는 것.

물꼬는 더 이상 공동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여전히, 꾸준히, 공동체의 이름으로 모이려는 이들에게

다만 머물다 가실 것을 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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