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7.쇠날. 맑음

조회 수 691 추천 수 0 2014.04.05 08:25:33



바람 몹시 불었습니다, 구름 잠시 지나기도 하고.

단식 이틀째.

얼마나 먹고 살았길래 아직 속이 이리 무겁단 말인가요,

이틀 곡기를 넣지 않았는데도.

대배 백배로 시작하는 아침,

개운한 아침이긴 하나 그래도 수행하고 나니 고단함이 좀 밀려옵니다.


어제 남도의 한 절집에서 베어온 대나무들을 내렸습니다.

배사며 풍사며 다입궁사며 차 관련 도구를 만드는 데도 쓰고,

더하여 평상도 하나 만들어볼까 하지요.

소사아저씨는 닭장 뒤란 밭 마른풀을 뜯다가

간장집 앞 도랑을 청소하고 계셨습니다.

한 자리 일을 끝내지 못하고 여러 날 끌고 가는데,

그게 또 당신 일하는 방식이십니다.

산만하고 더디지만 끝을 만나는 날 오지요.

사람이 같이 살다보면 더러 내 방식인가 아닌가로 다투는 날이 있습니다.

아집이 드러나는.

그런데 그 순간 이게 정녕 죽고 사는 일이더냐 물어볼 수만 있다면

사람살이 갈등 반은 줄지 싶은.


한 방송국에서 전화.

새로 만드는 프로그램에서 동행하자는 소식.

여행을 하고 그 산지에서 얻은 것들로 밥을 지으며 얘기 나누는.

같이 민주지산 올랐다가 물꼬로 들어와

이곳을 둘러친 자연과 사는 것들과 물꼬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일단 단식 중이니 이후 다시 연락 하라 했습니다.

할 만하면 할 테고, 아님 말테고.


식구들 밥상 준비 좀 해둡니다.

단식수행을 하던 초기엔 단식을 않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위해

때마다 밥상을 차리기도 하였는데,

그 세월 오래이고 보니 자리가 잡혀

밑반찬과 찌개거리를 좀 챙겨놓으면

단식을 하지 않는 식구들이 알아 챙겨 먹습니다.


단식 때는 읽을거리를 준비해두지요.

평소 읽고 싶었으나 미처 못보고 있던 책이거나

그 맘 때 잡히는 책이거나

필요한 공부 책이거나...

오늘 책 좀 읽었네요.

이래서도 단식을 즐기는군 싶은.

‘목숨껏 노엽다’,

오늘 시를 읽다 발견한 구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으나

한편 어떤 낱말은 너무나 적절하게 그 상황을 전하기도 하지요.

오늘 그 구절이 그러하더이다.

아, 제 마음이 그리 노여웠다가 아니라

때로 노여움이란 것이 목숨껏이기도 하더라는, 충분히 노여움이 전달되는 문장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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