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14.달날. 맑음

조회 수 697 추천 수 0 2014.05.15 03:37:11


상추와 열무, 봄배추 씨를 놓았습니다.


수업을 하나 빼고 급히 남도를 다녀옵니다.

2시에 읍내에서 지역 어른들 만나기로 한 일 있어

그 시각에는 돌아오겠다고 남도 끝을 향해 새벽같이 출발했지요.

할아버지께서 세상 버리셨습니다.

고교 은사님의 시아버님.

고교 때 선생님은 몇 가지 까닭으로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제자를 붙들고

학교 바로 아래 있는 당신 댁에 재우고 멕이셨습니다.

고 3, 도시락을 두 개 싸야 했던 그때,

당신은 아침에 학교에 제자를 먼저 보내고

당신 담임 맡은 학생 편에 데리고 두 개의 도시락을 넣어주셨더랬지요.

고기를 안 먹는 수험생을 위해

아주 잘게 다진 고기를 넣어 동그랑땡도 부쳐주시던 선생님.

방이라고는 달랑 두 개,

마침 와 계셨던 시어른들이 저랑 방을 같이 써야할 때도 있었지요.

그렇게 정들었더랬습니다.

물꼬에 족보와 함께 와 있는 진돗개 장순이도

할아버지께서 2003년 가을 실어다주신 것이지요.

지난 세월 그렇게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왔습니다.

어쩌면, 피로 이루어지지 않고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꿈은

거기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꼭 ‘옥교장’ 하고 부르셨던 당신.

“좋을 때 가셨네, 우리 할아버지. 제가 올 수 있을 때 가셨으니...”

덕분에 선생님도 뵙고 사부님도 뵙고 할머니도 뵙고.

머지않아 퇴임하실 선생님은 마침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담당이셔서

7월에 바로 그 자유학기제 건으로 아일랜드에 한 달 갈 예정이라 하자

다녀와 좋은 역할 제발 좀 많이 해 달라 당부하셨습니다.


수를 좀 놓을까 합니다.

물꼬에 자주 손발 보태는 벗의 가게에

들꽃을 수놓아 액자를 만들어줄까 합니다.

일단 할 준비를 해두면 언제든 하게 되겠지 하고 실도 사고.

아이들과 십자수 놓던 것도 있어 그게 잘 쓰일 수도 있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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