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3.쇠날. 비 내리다 갬

조회 수 700 추천 수 0 2015.04.29 11:40:39


소나무껍질을 벗긴다.

벗겨놓은 껍질이 보인 속살이 비에 젖은 복사꽃 같다.

면소재지 벗이 두 그루 실어다 준 것이다.

장승을 깎고자한다.

끌로도 밀고 낫으로도 민다.

그런데, 자꾸 가시가 이는 게, 소나무 꼴을 한 낙엽송 아닌가 싶은.


이른 아침부터 부면장님과 계장님 한 분 걸음하시다.

군청에 동향보고를 하실 거란다.

출장 가신 면장님은 달날 오신다지.

달골 뒤란 경사지 이야기이다.

3년 전 애를 먹이며 했던 몇 천만 원의 공사가 무색하게 다시 무너져 내렸고,

해마다 쓸어내고 망을 씌우며 보내왔던 터.

이제 밖의 손들에 힘을 빌려한다.


달골 뒤란 현장에 또 한 곳의 건설사가 들어와 견적을 냈다.

두 번째 견적.

일전의 것과 다른 공법이고, 공사기간으로나 비용으로나 훨씬 가볍다.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공사비일 것.

몇 해째 반복되고 있는 이 일을 이제는 마무리지어야지 한다.


새 이장님도 달골 현장에 다녀가신다.

어제 면담이 있었고,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공적인 일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로 보고

같이 방법을 찾아보기로.

면사무소에서도 아래로부터 수순을 밟아가는 것에 대해 조언했다.

그건 그것대로 또 길을 찾기로.


시인으로 늦게 등단한 후배가 한밤에 전화를 했다.

쓰니 뭐가 되더란다.

쓰는 게 중요한 거 같다, 고 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시인이다.

나이 스물에 유달산에서 뭔가를 끄적이는 누나를 보고 멋있었다 했다.

그는 그렇게 시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누나의 시집을 다시 읽으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전화했다 했다.

서른에 이르던 두어 해에 갈겨쓴, 시라고 하기 사실 어려운 글들이다.

그때, 그 유달산에서 말이다, 내가 썼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말이다, 지금 여기 이렇게 몇 자 쓰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지금 쓰는 것이야말로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퍼뜩 그런 생각 든다.


그 결에 잠이 깨 책상 앞이다.

봄밤이 맞다, 틀림없다, 뒤척이는 걸 보면.

어디 꼭 달골 뒤란에 대한 걱정만이 까닭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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