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3.해날. 갬

조회 수 687 추천 수 0 2015.09.15 12:14:18

 

처서, 더위가 그친다는.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벌초를 시작할 때.

이제 마지막 풀베기 혹은 풀매기 풀뽑기가 될 터.

포쇄도 이맘 때 하는 일이라, 책이며 옷가지며 볕에 말리는.

옛 어른들은 한지 책을 꺼내 포쇄하고

벌레를 막기 위해 창포 혹은 천궁과 함께 넣어 기름종이로 쌌더라지.

 

올 여름이 참 무겁게 가네.

계자 마지막 밤 대동놀이를 위해 간 고래방에서

놀이를 시작하기 전 혼자 돌다 넘어진 아이가 있었고,

한밤중에 간 병원에서는 뼈에 금이 갔다고 했고,

서울 집으로 돌아가 간 병원에서는 부러졌다 했다.

아이는 깁스를 하고 누웠고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 하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름 계자이다.

 

살다보면

그간의 선한 마음과 애씀은 어디로 가고 터무니없는 말 앞에 그만 주저앉을 때가 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

여름 어디메쯤에서 받은 한 통의 전화가 아직 윙윙거린다.

한 아이가 집을 떠나 길 위에 있을 적 이곳에도 들렀는데,

마침 내내 미루던 사무적인 일로 그 댁에 전화를 넣었더랬다.

그런데, '애를 거기 보내놨을 때 우리에게 전화를 한 저의가 뭘까를 생각했다' 했을 때,

물론 말이란 게 앞뒤 맥락이 있는 속에 나왔겠지만,

그만 모든 끈이 놔졌다.

오해란 것이 이런 것이다.

저의라는 말이 갖는 불편함과 부정성이 주는 상(像)도 한 몫 했을 것.

아팠고, 아프다.

정녕 긴 여름이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 불가에서 들었던 말을 생각하노니.

살아가며 온갖 괴로움이 우리 앞에 놓이겠지만,

어느 집이고 곡소리 없었던 적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살아있기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일,

하지만 그 슬픔과 분노와 화와 애끓음이 내 안에서 나를 다시 해치지 아니하도록 하라는.

여름은 길지만 가을은 올 것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766 2016. 7.15.쇠날. 빗방울 다섯 옥영경 2016-08-06 687
1765 2016. 3.26.흙날. 맑음 옥영경 2016-04-11 687
1764 2016. 3.23.물날. 맑음 옥영경 2016-04-08 687
1763 2015.11. 8.해날. 비 옥영경 2015-12-04 687
1762 2015.10.27.불날. 비 옥영경 2015-11-23 687
1761 2015. 5. 6.물날. 맑다 구름 조금 옥영경 2015-06-22 687
1760 2015. 5. 3.해날. 비 옥영경 2015-06-08 687
1759 2015. 3.25.물날. 맑음 옥영경 2015-04-24 687
1758 2014. 9.26.쇠날. 맑음 옥영경 2014-10-22 687
1757 2014. 9.15.달날. 맑음 옥영경 2014-10-15 687
1756 2014. 1.25.흙날. 비 옥영경 2014-02-18 687
1755 2013. 7. 7.해날. 안개에서 드러나는 마을 옥영경 2013-07-26 687
1754 2016. 3.16.물날. 맑음 옥영경 2016-03-31 686
1753 2015.12.15~16.불~물날. 바람 불고 이튿날 밤 눈 옥영경 2015-12-29 686
1752 2015.11. 9.달날. 맑음 옥영경 2015-12-04 686
1751 2015.10.11.해날. 흐리다 비 / 10월 위탁교육 여는 날 옥영경 2015-11-06 686
1750 2015. 4. 8.물날. 흐림 옥영경 2015-05-07 686
1749 2월 빈들 여는 날, 2015. 2.27.쇠날. 맑음 옥영경 2015-03-20 686
1748 2014.10. 3.쇠날. 바람 많은 옥영경 2014-10-28 686
1747 2014. 5. 6.불날. 맑음 옥영경 2014-05-31 68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