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28.쇠날. 소나기

조회 수 871 추천 수 0 2015.09.18 09:18:39

 

순방이 있으면 답방도 있어야지.

해마다 6월이면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물꼬에 걸음하시기 네 해째; ‘詩원하게 젖다’

달마다 마지막 금요일에 하는, 선생님이 중심으로 계신 인사동 시낭송회에

물꼬 식구들 몇과 걸음 했다.

‘김영갑, 십 년만의 나들이-오름에서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展’에도 들렀네.

제주도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를 걷고 있는 듯했다.

마침 흐리고 바람 불고 비도 지났다.

 

베짱이주간 닷새째.

첫 시집을 낸 서른에 경주에 갔고, ‘서른 살의 나는 소를 찾는 자에 가까웠을 텐데 덜컥 십우도의 마지막 장을 가슴에 품고 말’았더란다.

그로부터 12년 후, 2012년 봄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이 공동 기획해 어떤 소재든 상관없으니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를 써 달라 소설 연재를 부탁, 스스로를 일깨워 고통을 파하며 저잣거리로 들어가 손을 드리운 사람들, 원효, 그리고 요석의 이야기를 이듬해 봄까지 꼬박 1년을 그렇게 연재했고, 거듭 퇴고했고, 2014년 봄의 참혹이 소설을 더욱 끈질기게 매만지도록 했더라지.

<발원(發願) : 요석 그리고 원효>(김선우/민음사, 2015)는 그렇게 씌어졌다.

빛나는 저녁(요석)과 신새벽(원효)의 사랑, 그리고 원효의 새 세상을 향한 권력과의 갈등,

두 축이 소설의 큰 얼개.

사랑을 통해서 자유로워지는 사랑을,

사랑을 하면서도 각자의 삶을 견실하게 만들어가는 전범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소설은 물었다,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하고.

 

p.115

조국, 충, 용맹, 임전무퇴. 이 모든 관념은 한 줌 지배 귀족의 권력 욕망에 소모되는 가여운 희생을 낳을 뿐이다. 헛된 망상을 조장할 뿐이다. 어떤 것도 생명 앞에서는 모두 삿되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겠다. 있는 그대로 고통의 실상과 대면하겠다. 신라는 보이지 않으나, 저 소년은 보인다. 신라의 맥박은 뛰지 않으나, 저 소년의 맥박은 뛰고 있다. 내게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경계 지어 놓은 삿된 국경보다 더 큰 조국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아낼 것이다. 조국의 이름으로 살생하지 않아도 되는 조국을.

 

화랑과 불국토의 화려한 신라가 아닌

골품에 따른 차별과 어미가 아이를 내다파는 가난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서라벌,

왕권과 신권의 줄다리기 안에서 국가를 읽노니.

 

원효를 말하자면 필연적으로 당대의 의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국가와 귀족을 업고 화염 10개 사찰을 세우고 그 권위를 행사하며 중생을 앞에서 이끌던 의상,

그와 달리 서라벌 저잣거리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갔던 갈릴리 바닷가 맨발의 예수처럼 걸었던 원효.

‘물에 빠진 사람들의 아우성을 보면서 재난 구조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과 물에 빠진 사람들의 아수라장에 뛰어들어 그들을 묵묵히 구하려는 사람의 차이. 말로 하는 불교와 말로 하는 자비는 몸으로 하는 불교와 몸으로 보여 주는 자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 원효가 가진 절절한 인문정신!’(강신주, 작품해제에서)

“당신들이 바로 부처다. 그리고 당신들 모두 부처가 되었을 때, 이곳 신라, 나아가 한반도는 바로 불국토가 되는 거다. 모든 사람들이 귀하디귀한 부처가 되는 비밀은 바로 당신들의 마음, 바로 그곳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거다.”

원효는 그를 따르는 이들과 서라벌 외곽에 ‘아미타림’을 일구었다.

이것이 이 소설의 골자는 아니겠으나

누구나 말이다, 그런 것 아닐까. 자기 삶을 건드리는 대목에 가장 눈이 가기 마련이다.

오래 공동체를 꿈꾸었고, 그 실험을 한 바 있으며, 한계를 알면서도 여전히 또 꿈을 꾸는

내 꿈 그것이 아미타림이므로.

‘지금 여기서 극락세계를 가꾸리라.’

다섯 개의 산채; 장애인, 혼혈인, 전쟁고아들, 가혹한 주인을 피해 탈출한 노비들의 산채,

그곳에서 사람들은 땀흘렸고 나누었고 함께 뒹굴며 마음 순순했다.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그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변화해야 합니다.”

원효는 귀족중심의 황룡사 건너 백성들의 절 분황사에서 이레에 한 번씩 직접 법회를 열고,

모전탑 옆 상설 천막 ‘노피곰’도 두었다.

소도 같은 곳쯤이라 여길 수 있을까.

달골에 꾸는 치유정원의 이름도 그쯤이지 않으려나.

 

불가에서 말하는 ‘두 번째 화살’이 여기서도 날더라.

살아가면서 슬프고 괴로운 일, 이 첫 번째 화살을 누군들 피해갈 수 있나.

살아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겪는 일.

슬픔과 괴로움은 그 자체로는 번뇌가 아니나

그것에 끄달리며 자신 속에 번뇌를 쌓을 때 우리는 그만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슬퍼한 후 슬픔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슬픔에 사로잡혀 자신을 감옥으로 데려가는 경우’.

아희들아,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이 맞아도 내 내부로부터 쏘아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기.

 

철학자 강신주는 해제에서

‘나는 임신한 요석이 원효로서는 생면부지의 여자, 절대 권력자였던 아버지에 의해 정치적 희생물이 될 위기에 빠진 불행한 여자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니까 원효는 요석과 잠자리를 함께했다는 제스처로 그녀와 태중의 아이를 구했다는 확신!’이라고 썼다.

그럴 수도.

모처럼 잘 읽었던 소설이었노니.

영화로 읽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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