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검사를 하러 읍내 나가 있는데

늘 하나로 겅중 묶어다니는 머리 고무줄이 끊어졌다.

가방 어디에도 여분의 고무줄이 없네.

미용실 앞이었다.

잘랐다.

십 수 년을 길어있던 머리이어 하도 무슨 일 있느냐 물어오기,

아, 나 사랑을 잃고 마음 가눌 길 없어 그리했노라,

그리 할 말 있으면 재밌을 법도 하겠지만,

남의 마음을 어쩔 수 없으니 지 머리라도 자르는 거지, 그리도 말하더라만,

아쉽게도 별일 없다.

다만 고무줄이 끊어졌을 뿐.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떤 삶이든 내적 관점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오윤)를 읽었다. 자기역사쓰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러니까 상담이란 걸 하며

늘 마주치는 나, 그래서 내 근원의 슬픔과 몇 가지 것들에 대해

이런 글을 쓰리라던 생각이 강하던 때,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좋은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도

그는 외로웠고 우울했고 두려웠고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했으며,

사랑 앞에서 늘 머뭇거렸다.

왜 그랬던 걸까?

전라도 출신이라서 비서울대출신이어서 성공할 수 없었던 아버지로부터 방황하고

사랑받지 못해 냉정한 어머니로부터 사랑에 자신 없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

그 배경에 일제 강점기가 한국전쟁이 빨갱이가 전주의 모스크바가 목포와 광주가,

그리고 서울이 있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정리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는 고통스러웠고, 나도 그러했다.

우리는 모두 아프다.(물꼬가 아이들의 학교에서 어른의 학교로 축이 더 옮겨간 까닭 하나도 거기 있는!)

그리고 그것은 결코 내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와 맞물려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에 좀 더 당당해도 된다. 사랑에 좀 더 걸어가도 된다.

그가 말했다.

“내 마음의 불안과 슬픔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사는 게 그다지 힘들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다음은

‘고통을 경험한 후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는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을 대하는 순서와 리듬에 달려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3024 2017. 9. 1~3.쇠~해날. 맑다 밤비, 그리고 개다 옥영경 2017-10-11 856
3023 2017. 8.28.달날. 흐림 옥영경 2017-09-29 856
3022 2017. 7.20.나무날. 쨍쨍, 그러나 말랐다고 못할. 폭염 옥영경 2017-08-30 856
» 2015.12.11.쇠날. 비 내리고 개고 옥영경 2015-12-29 855
3020 2015. 6. 8.달날. 비 한소끔 옥영경 2015-07-11 856
3019 2013.11.2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12-16 856
3018 2010. 6.20.해날. 꾸물꾸물 옥영경 2010-07-06 856
3017 2017.11.16.나무날. 맑음 / 노래명상 옥영경 2018-01-06 855
3016 2017. 8.27.해날. 구름 몇, 그리고 맑음 옥영경 2017-09-29 855
3015 2017. 4.17.달날. 비 옥영경 2017-05-10 855
3014 2017. 4.13~15.나무~흙날. 맑음 옥영경 2017-05-10 855
3013 2016 여름 어른계자 여는 날, 2016. 8.13.흙날. 맑음, 전국 사흘째 폭염특보 옥영경 2016-08-26 855
3012 2010. 6.23.물날. 맑음 옥영경 2010-07-12 855
3011 2017.12.12.불날. 맑음 / 장순이 가다 옥영경 2018-01-15 854
3010 2013 겨울 청계 닫는 날, 2013.12.29.해날. 맑다 흐려가는 하늘 옥영경 2014-01-04 854
3009 2010. 6. 5.흙날. 맑음 옥영경 2010-06-12 854
3008 2005.11.19.흙날.맑음 / 악은 왜 존재하는 걸까 옥영경 2005-11-21 854
3007 2019. 4.17.물날. 맑음 옥영경 2019-05-12 853
3006 2017. 7. 4~5.불~물. 맑음 옥영경 2017-08-02 853
3005 2016.11.23.물날. 흐림 옥영경 2016-12-12 85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