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건지기.

그대 있어 나 있노니.

산마을의 새해 수행,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전통수련을 하고 대배를 백배하고 명상하고.

계자 준비위 샘들이 함께 연 아침.

 

161 계자 ‘미리모임’이 저녁에 있는 날.

먼저 들어왔던 샘들은 미리모임 올 샘들을 잘 안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무슨 도제처럼 중심축이 되는 계자 준비위 샘들이 미리모임에 오는 샘들을 챙기고,

샘들은 새끼일꾼들을, 그리고 새끼일꾼들은 아이들을 챙길 것이다.

몇 단계의 지휘체계(?) 속에 모두가 탄탄하게 그리 돌봐질 것이다.

모임은 저녁이나 미리 몸을 움직이고 손을 보태기 위하여 샘들은 점심 버스로들 들어왔다.

“저것들이 뭐할라고 이 모진 겨울 여기로 오고 또 오는 거야?

내가 계자 그만하지 싶어도 이래서 못 그만둘 수가 없잖아.”

그 말 속에 함께하는 샘들에 대한 얼마나 깊은 애정이 묻어있는지 아는 이는 알지.

이 넘치는 풍요의 시대, 모자라고 불편한 이곳에

이 젊음들은 시간을 돈을 노동을 내놓고 있다.

나는 이것 또한 물꼬의 기적이라 부른다.

나, 또 잊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결국 물꼬에서 키우지 않았던가.

일을 통해, 연대를 통해.

 

밥바라지 엄마들도 점심 때부터 들어와 손도 마음도 수월하다.

밥바라지 1호 엄마 백귀옥님과 밥바라지 2호 조혜영엄마.

조혜영 엄마는 어느 해 여름 아이와 함께 밥바라지를 다녀간 진희샘의 인연이다.

일전에 제주도에서도 첫날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같은 방을 썼던 이도

진희샘이 계신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이였다.

인연 잦네, 좋은 인연이어 더욱 기뻤다.

 

마을의 어르신 한 분이 건너오셨다.

마을에서 조율자로 해결사로 물꼬가 하는 역 할들이 가끔 있다.

“선생님이 너무 바쁘시니까...”

한사코 말을 풀고 가라하나 사람들 웅성이고 있으니 꺼내기 쉽지 않으신 모양.

“다음주말에나 시간을 낼 수 있는데...”

그때까지 괜찮다며 오는 흙날 다녀가시기로 하다.

나는 그래도 아직 젊으니 낫구나,

홀로 사시면서 갑갑하고 원통한 일들이 어디 한둘일까.

그래서 이 산마을 어르신들이 나날을 살아나가시는 것 보면,

나 자주 엄살을 부리고 있구나 싶은 맘 드는.

 

새끼일꾼 정근이가 학교 입학 일정으로 오지 못하게 되어

열다섯의 샘들은 열넷이 되었다.

교무행정 희중샘, 학생주임과 불 지킴꾼 기표샘, 연규샘, 인영샘, 휘령샘,

아이였고 새끼일꾼이었고 품앗이일꾼이고 논두렁이 되는 이들,

그리고 새끼일꾼 도영 효기 지혜 태희 다은 형님들.

한 사람의 성장사에 동행하는 느꺼움을 가르쳐준 이름자들.

나를 키운 7할은 물꼬이다, 그래서 물꼬에 나는 손발을 보탤 수밖에 없다,

아이였고 새끼일꾼이었고 그리고 이제 품앗이일꾼인 인영샘이 말했다.

옥샘한테 주례를 예약한다는 이.

물꼬야말로 그대로 물꼬를 키웠노니.

그대의 좋은 품성을 이곳에 더했다마다.

 

도영 형님과 효기 형님이

기표샘이 오늘 들어오지 못해 아궁이 앞에서 밤을 지키는 학교아저씨를 챙기다.

기특하고 고맙다.

샘들이 하는 걸 봤거나 얘기를 들었거나.

그렇게 우리는 마음씀을 배우고 익힌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새끼일꾼들을 통해 보고 배울지니.

사는 일이, 수행이, 결국 마음 넓히는 일이더라.

 

<돈키호테>였을 게다.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당나귀와 똑같지.

그 증거로는 사랑을 하고 있는 녀석들을 보게나.’

소설이 시작되기 전 소네트의 마지막 구절 즈음에 그런 문장이 있었더랬다.

어리석으나 우리 불 속으로 뛰어드나니.

그러나 사랑은 바래가고 그러다 서로 다른 것 같다, 대개 그 차이를 인정하며 헤어진다 한다.

아니, 그 차이를 인정하면 사랑해야지! 다를 줄을 몰랐더냐. 우리 다 달라. 하지만 맞춰보는 거지.

그러니까, 애정이 식을 때 우리 그리 말했던 거다, 허울 좋게. 엄밀하게는 더는 사랑하지 않을 때.

이제 맞추기에 게을러진 거지.

그 차이가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다름을 인정하며, 당나귀 같을지라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새해이기로.

왜? 사랑이 다니까, 우주이니까.

 

아, 내일은 우리 아이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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