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9.물날. 흐림

조회 수 690 추천 수 0 2016.03.29 00:52:15


다시 기온 점점 내려간다.

그래도 풀들은 봄을 기억하노니.

꽃밭이며 남새밭이며 돌 사이 마른 낙엽을 긁어내거나 둑을 만들거나.

평상에는 때늦은 곶감이 말라가고 있다.


봄엔 바람이 많지.

아직 아린 겨울이 꼬리에 매달려 있으나

그래도 봄 들녘이다.

지리산 아래 한 폐교에서 사흘째.

이번 학기 시작하는 나흘은 이곳에서 하고 있다.

손님을 맞다, 연락 없이 찾아든.

미리 알아 맞을 채비하면 좀 더 나은 찻상이고 밥상일 수 있을 것이나

그리 있는 대로 내는 밥상도 좋다.

밥이 되는 동안 마당에 나가

방풍 신선초 냉이 쑥 돌나물 광대나물 부추 뻐국채, 뭐나 다 좋다,

풀을 뜯어와 샐러드로 내다.


사람 손이 닿은지 오래인 폐교 부엌,

큰 손님들 드나들어 살림은 많고,

하지만 한 번에 다 치우지 않는다.

성질대로 밤을 새워서라도 하려드는 거 그런 거 이제 안 한다.

나이를 먹어 힘에 부쳤거나, 게으름이 좀 생겼거나, 아니면 여유가 생겼거나,

그것도 아니면 안 해도 안 죽는 줄 알았거나.

할만치만.

하루에 고무장갑 끼면 그 결에,

빗자루 들었으면 그 결에,

걸레 들었으면 그 결에 조금 더 영역을 넓혀 치운다.


소리 동무와 북 치고 소리했다.

소리를 하다보면 북에 소홀하기가 또 쉬운.

그게 익어야 또 박을 제대로 찾아갈 것이고

그래야 소리 또한 제 길을 잘 갈 것.

그렇게 짝을 이뤄 되는 일들이 있다.

이게 충분히 익으면 저것도 또한 익게 되기도.


기온 다시 내려간다 하나

봄이 가락을 타고 덩실거리며 걸어온다,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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