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13.해날. 흐림

조회 수 718 추천 수 0 2016.03.31 05:06:20


사료에 의지하기 쉬운 개밥을 요새는 자주 끓인다,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채소들이 나오기도 하고

익지 않은 음식재료 찌꺼기들을 닭밥이나 두엄더미로만 보내기 아깝기도 하고.

아무래도 낮 밥상을 먹을 녘 쓰기 좋은 화덕이어

개밥을 올려놓고는 하는데,

집짐승들 먹이는 시간대는 낮 두세 시,

학교아저씨는 그걸 저어가며 찬물에 식혀 들고나가신다.

뭘 그렇게까지 할 것까지야, 싶었다.

시간 지나면 뜨거운 거야 식을 테고,

뜨겁다면 식고 나서 먹지 않겠는가 말이다.

“왜 굳이 식혀서 주셔요?”

뜨거운 걸 주면 바로 엎어버린다네.

아, 몰랐고나.

명절이면 사람들이 비운 학교에 남아 개들이며 닭이며 밥을 챙기지 않은 것도 아닌데,

물론 기락샘이나 류옥하다며 다른 이들이 대부분 하기도 했지만,

뜨거운 걸 줘 본 일이 없었던 거다.

여태 여기 살아도, 이 학교를 쓴 지가 20년이다,

그렇게 모르는 구석들이 있고 또 있는.


새벽, 아이 아침을 멕여 기숙사로 돌려보내고

바느질 다림질을 하고 빨래도 돌릴 적

학교 아저씨는 옛 목공실 앞 물길을 다시 손보네.

계자에서 기표샘이랑 아이들이 만든 물길인데,

다시 파서 관을 묻었다.

김장독 둘레도 다시 파서 다듬었네.


달골도 올라 돌아보다.

곧 잠자리도 올라가야 하고,

봄 되었으니 명상정원도 다시 큰 굴삭기 들어와 기본 작업을 해야 할 터.

뒤란 축대 너머가 비에 다시 쓸려 내려온 곳들이 있었다. 수로가 막혀버린.

무슨 봄비가 창대비로 내린 얼마 전이 있었네. 경칩이었더랬지.

저건 또 어찌 해결할까.

명상정원 작업을 하며 궁리를 좀 해보자.

뽀르르 또 군청까지 좇아갈 일은 아직 아니겠고.

축대를 군에서 해주었으니 보수도 알아 해 달라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할 만한 일은 또 우리 사는 곳이니 우리가 해야지 않나.


저녁, 동편제 심청가 가사를 일부 정리하여 인쇄를 하고

오랜만에 녹음한 소리도 듣는데,

익히고 연습하는 게 아니라 어느 사이 감상을 하고 있네.

어찌 저리도 구구절절한가.

서구사람들을 만날 때면 판소리를 일인 오페라라 소개하는데,

정말이지 참말 멋진 가곡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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