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물날 촉촉하게 내리는 비

조회 수 1442 추천 수 0 2005.04.07 22:12:00
< 4월 6일 물날 촉촉하게 내리는 비 >

물꼬가 그토록 염원하던 트럭이 왔습니다.
류옥하다 외가댁에 김경훈님과 가지러 다녀왔네요.
외가댁은 2만평이 넘는 큰 땅살림을 정리하시는데
수영장도 물이 다 빠져있고, 살림들이 널려있는 걸 보며,
'사람이 살았던 자리'에 대해 오래 생각했더랍니다.
수천 년 전의 삶도 그 흔적으로 엿보지 아니하더이까.
우리들 삶의 자리는 어찌 남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통해 양파껍질처럼 켜켜이 남을 테지요.
하기야 삶에 무얼 기대한단 말입니까,
다만 열심히, 즐거이 살 량입니다.
이 커다란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존재로 이곳에 온 그 의미가 무언지,
그래서 어찌 살까 하는 사유를 놓치지 말고.
아, 트럭 얘기를 하다 말았네요.
예, 노래 부르던 트럭 소망을 들으시고
어르신들이 싸악 수리해서
기꺼이 내놔주셨답니다.
당장 아쉬운 것 한두 가지 아닐 텐데도.
잘 쓰겠습니다.
"트럭만 있으면 나무 할 때..."
넘의 트럭만 지나면 안타까워하던 젊은 할아버지도 얼마나 좋아라 하시는지요.
트럭 오는 편에 커다란 항아리가 셋이나 딸려오고
아이들이 빠질 것 같던 개수대를 바꿀 설거지대도 실려 오고,
음료수를 넣어두는 냉장고도 오고,
컵살균기에 컵이며 냄비들까지,
게다 갓 뜯은 달래와 쑥까지,
그리고 반찬들 몇 가지도 함께 왔답니다.
오는 길에 할 요기로 김밥까지 싸주셨지요.
물꼬의 정말 큰 논두렁들이시랍니다.

저들끼리 꾸리는 물날,
스스로공부를 끝내고 비님 덕에 여유로왔다지요.
비오는 날 하기로 한 장구 치는 일까지 쉬었으니.
떡볶이와 오뎅(물꼬의 어린 개들) 훈련도 시키고,
신문도 만들고,
목공실에 드나들며 고전적 놀잇감들에도 다시 심취했더라나요.

김현덕님이 혜린에게 물으셨더랍니다.
"일도 안했는데 새참 먹어야 하나?"
"간식 먹어야지요."
"새참이든 간식이든 부엌에서 나가는 건 똑같은데..."
여하튼 간식 먹는 거랍니다.
일 안했으니 새참 달랠 수야 없었겠지요.
그럼요, 새참은 새참이고 간식은 간식인 게지요.
역시 부엌에서, 콩나물밥을 하셨다는데
아무래도 허전하다 싶으셨다나요.
옆에 있던 채은이한테 돌나물도 넣을까 하니 넣자더랍니다.
저들이 캔 거지요.
곁에 있던 냉이도 썰어넣자더래요.
애들이 푸지게 잘도 먹었다지요.
"하다 할머니댁에서 반찬도 한 아름 오고, 그런 것으로 부엌은 행복하고..."
그래요, 우리 이곳에서 사려는 게(살려는 게) 뭐 별 것 아니라니까요.
우린 다만 '적게'쓰면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우리들 밥상은 소박할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주 추웅분히 행복한 게지요.
오늘 김현덕님이 그걸 다시 깨쳐주셨더이다, 공동체 어른모임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024 7월 5일, 매듭공장 그리고 옥영경 2004-07-13 1443
6023 132 계자 이튿날, 2009. 8. 3.달날. 빗방울 한둘 옥영경 2009-08-09 1442
6022 113 계자 사흘째, 2006.8.23.물날. 해 잠깐 다녀가다 옥영경 2006-09-08 1442
6021 109 계자 나흗날, 2006.1.23.달날. 맑음 옥영경 2006-01-31 1442
6020 3월 7일 달날 맑음, 봄을 몰고 오는 이는 누굴까요 옥영경 2005-03-10 1442
6019 117 계자 여는 날, 2007. 1.22.달날. 흐리더니 맑아지다 옥영경 2007-01-24 1441
6018 2005.11.17.나무날.맑음 / 끽소리 못하고 그냥 쭈욱 옥영경 2005-11-20 1441
6017 2005.10.11.불날. 날 참 좋다! 그리고 딱 반달/ 상처를 어이 쓸지요 옥영경 2005-10-12 1441
6016 7월9-11일, 선진, 나윤, 수나, 그리고 용주샘 옥영경 2004-07-20 1441
6015 129 계자 사흗날, 2009. 1. 6. 불날. 눈이라도 내려주려나 옥영경 2009-01-21 1440
6014 108 계자 열 하룻날, 2006.1.12.나무날. 늦은 밤 우박 옥영경 2006-01-14 1440
6013 7월 7일, 존재들의 삶은 계속된다 옥영경 2004-07-15 1440
6012 9월 17-19일, 다섯 품앗이샘 옥영경 2004-09-21 1439
6011 7월 16-20일, 밥알식구 문경민님 머물다 옥영경 2004-07-28 1438
6010 115 계자 여는 날, 2006.12.31.해날. 맑음 옥영경 2007-01-03 1437
6009 3월 21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5-03-21 1437
6008 9월 21-4일, 밥알식구 안은희님 옥영경 2004-09-28 1437
6007 2007.12. 3.달날. 간 밤 눈 내린 뒤 옥영경 2007-12-27 1436
6006 103 계자, 5월 27일 쇠날 맑음 옥영경 2005-05-29 1436
6005 1월 27일 나무날 맑음, 101 계자 넷째 날 옥영경 2005-01-30 143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