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일홍 >
옥 영 경
에버톤거리 역전 길 건너
쉬었다 가는 작은 광장은
시들려든 팬지꽃이 갈아엎어졌더랬습니다, 지난 봄
...선생님께서 보내신 엽서는 잘 보았구요
저도 지금까지 선생님 생각 많이 했어요
내밀던 떡잎은
백일홍 밭으로 편지처럼 왔습니다
...사실 제 어머니께서 대장암으로 고생하고 계세요
한국에서 항암치료받구요 별로 효과가 없어서 미국으로 가셨어요
백일홍 붉은 꽃에 머물러서야
일렁이는 맘을 안다는 게 늦은 일이지만
다 자라서도 어린 맘을 고스란히 가진 꽃밭 앞에서
아물어서 돌아가는 상처들을 더러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휴스턴으로 가서 어머니를 뵐 거예요
제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세요
백일을 붉은 해 따라 산다지요
사막을 다 지난 대상 무리처럼
죽음과 삶의 격렬함이 그 꽃밭에서 고요가 됨을 읽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2월 말이면 올 거예요
선생님도 한국에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열 세살 재신의 편지는
문득 문득 밥알에 섞여 돌이 되기도 합니다
죽든지 살든지 당신 응답일진대
다만 저 이가 견디게 하소서, 강건케 하소서
...언제 한 번 꼭 선생님 찾아갈 께요
(2003.02.오스트레일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