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농장에서 억새꽃 한 다발을 보내왔다.

잎이 여느 억새 같잖은, 흔하지 않은 억새였다.

태풍에 쓰러져 정리를 해야 했다지.

그러다 꽃 좋아하는 물꼬 생각나 나누신다셨다.

가을이면 이 멧골로 들어오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억새를 꺾어 들어와 모둠방과 가마솥방, 또 달골 햇발동에 꽂고는 하였다.

그렇게 가을을 집으로 들이던 일이

태풍 덕에 이르게 가을을 맞게 되었네.


대처 나가있는 식구들이 들어온다 하였는데

이 비바람에 굳이 뭘 오나 말릴 참인데

벌써 출발들을 했다 했다.

낮밥을 차리러 학교로 내려가야는데,

바람도 비도 멎지 여전히 거칠었다.


밤새 비바람이 집을 때렸다.

지붕 한 쪽이 또 일어나기도 했으려나,

동쪽 벽면에서 요란한 소리도 났다, 거기는 또 뭐가 있더라...

지붕 남서쪽 모서리에 걸린 풍경을 그예 떨어져 날려가버렸는가, 아예 소리가 없다.

나가서 둘러봐야지 하는 아침이었지만

바람도 비도 계속되고 있었다.

숲이 통째 뽑힐 기세였다.


낮밥을 먹을 즈음 비는 그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더 큰 바람을 품었는 양 이 골 저 골이 돌아가며 산을 흔들었다.

낮 두세 시라던가 서너 시라던가

태풍이 이곳을 지날 거라 했다.

그런데 하늘은 또 벌써 태풍 지나 갔는 양 해까지 빠꼼 나왔다.

긴장과 달리 태풍의 기세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충북 안에서도 여러 피해가 있었다 했고,

상촌면에서도 물한리에 야산에서 떨어진 2톤 바위로,

면소재지에서 대해리로 오는 중간 지점 차유동에서도 산 쪽에서 낙석으로

잠시 길이 막혔더란다.

추풍령 신한리에서 6년생 홍로 사과나무 150그루가 다 쓰러졌다고 했다.


달골 햇발동 둘레 자잘한 화분이며 등이며들을 잘 치워두었던 어제였다.

다행히 별일 없었다.

사이집은,

수도계량기 뚜껑이 날리고 거기 들어있던 보온재비닐이 날리고 물이 차 있었다.

밤새 남쪽 벽면 쪽의 요란했던 시간의 정체가 그것이었던가 보다.

그밖에는 별 것도 없는 마당 살림이다.

아직 가녀린 울타리용 편백들이 지주대가 있었어도 뿌리가 다 나올 듯 휘청댔으나

그들 역시 무사했다.


오후는 날이 갰다. 바람도 누그러졌다.

낮 4시, 밭으로 갔다.

어느새 또 칡넝쿨이 감아올린 편백 두어 그루를 다듬어주었다.

하얀샘도 건너오고 기락샘과 학교아저씨와 함께 도라지밭을 맸다.

도라지들이 줄을 서서 땅밖으로 잎은 내밀었지만

모르고 보면 묵정밭일 뿐이었다. 풀숲이었다.

풀씨들이 떨어지기 전 뽑아서 멀리 보내야 한다.

흐린 날의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그제야 허리를 펴고 마을로 내려왔다.


중부지방에 발효된 태풍특보는 밤 9시 해제.

대신 강풍 풍량 특보 발령.

링링은 북한으로 빠졌다는데, 어려운 북녘 살림이 괜찮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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