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2.흙날. 맑음 / 돌격대

조회 수 752 추천 수 0 2019.11.27 10:28:04


학교아저씨는 마늘 심을 준비를 서서히 한다.

잡초부터 패 내고 있었다.

은행잎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쓸어냈다.


물꼬가 오늘은 인근 도시 너머까지 넓혀졌더라나.

내가 유기농 한다 하여 농약을 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살충제와 제초제를 치는 나무들 사이에서 일을 도왔다.

05시 일어나 곧 출발, 06시가 막 지나 현장에 합류했다.

농약 줄 둘을 살피는 일이 만만찮더라.

별 하는 일 없이 서 있기만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또 도움꾼이 없으면 쉽잖은.

농약을 중심에서 밖으로 쳐나갈 때는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되었지만

돌아들어올 때는 줄을 당겨 약 치는 이들의 힘을 덜어주어야 했다.

줄이 꼬이지 않도록, 또 그들이 원활하도록 요리조리 살펴야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말품으로 과일도 얻어먹고

중국인 친구에게 중국어를 몇 마디 배우기도 하고

어른들과도 이렇게 물꼬에서처럼 아이들과 놀듯이 놀고 일했네.

“우리는 팀이름도 있어! 돌격대!”

저녁 밥상 앞, 내일도 일들을 한다 하기 마침 해날이라 나 역시 붙을 수 있지.

물꼬에 손발 보태는 이의 현장, 그야말로 품앗이라.

“저까지 더해져야 ‘돌격대’ 완전체지!”

그 이름은 순전히 마스크에서 시작되었다.

그 마스크에 돌격대라는 상표이름이 적혀있었거든.

그래서 함께 일하게 된 우리는 돌격대가 되었더란 말이지.

연세 일흔 넷인 반장님이 어이 없어하시며

웃을까 말까 어리둥절해 하시는 얼굴이었더라는.


저녁까지 푸지게 먹고들 헤어져 달골에 드니 열 시가 넘어 되었다.

가끔 우리가 달골 행랑채라고 농을 하는,

며칠 씩 와서 농삿일을 보는 대문 곁 농막도 비어있고

적막이 흐르는 달골,

앗, 제습이가 없다!

엊그제 들어온 생후 2개월된 진돗개 강아지다.

줄이 끊어져 있었다.

그 어린 게 어찌 된 걸까,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걸까,

인물을 탐할 만하니 누가 업어 가버렸나,

멧돼지에게 먹힌 건 아닐까,

달빛마저 없었더라면!

외등을 켜고 줄을 자세히 보니 연장으로 끊은 건 아니고

저가 뱅글뱅글 돌며 끊었네 짐작은 됐는데,

애가 타서 불러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의 집 앞에 쭈그려 앉았는데,

그때 어둠 속에서 제습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배는 고프고 주인은 없고,

혼자 이 어둡고 너른 데서 얼마나 황망했을 것인가...

서둘러 밥을 주었다.


다른 때 물꼬에서의 작업 같으면

마른 흙먼지 정도만 털어서 작업복을 다시 입을 것이나

늦은 밤 작업복도 빨고 장화도 씻었다,

농약 난무한 밭을 다녀왔으니.

그제야 글 한 줄 쓰는데, 쏟아지는 졸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086 2019. 5.29.물날. 맑음 옥영경 2019-08-01 615
5085 2021. 9.21.불날. 비 내리다 오후 갬 / 한가위 보름달 옥영경 2021-11-18 615
5084 2023. 8. 5.흙날. 맑음 / 172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3-08-07 615
5083 2023. 5.13.흙날. 빗방울 몇 지난 다저녁때 옥영경 2023-06-13 616
5082 172계자 닷샛날, 2023. 8.10.나무날. 창대비 / 무한도전, 태풍 속 산오름 옥영경 2023-08-12 616
5081 2019. 7. 8.달날. 맑음 / 올해 두 번째로 나올 책의 원고 교정 중 옥영경 2019-08-17 618
5080 2019. 7.11~14.나무날~해날. 비 내리거나 흐리거나 맑거나 / 삿포로를 다녀오다 옥영경 2019-08-17 618
5079 2023.11.25.흙날. 맑음 / 김장 첫날 옥영경 2023-12-05 618
5078 173계자 사흗날, 2024. 1. 9.불날. 흐림 옥영경 2024-01-11 618
5077 2020. 3.17.불날. 맑음 옥영경 2020-04-13 619
5076 166 계자 이튿날, 2020. 8.10.달날. 비 옥영경 2020-08-14 619
5075 2023.11.16.나무날. 비 옥영경 2023-11-25 620
5074 2019. 7. 5.쇠날. 맑음 / 올 여름 첫 미리내 옥영경 2019-08-16 621
5073 2019. 7. 6.흙날. 가끔 해를 가리는 먹구름 /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스코트 새비지/나무심는사람, 2003) 옥영경 2019-08-16 623
5072 2019. 7.22.달날. 갬 / 별일들 옥영경 2019-08-22 623
5071 2020. 2.19.물날. 맑음 옥영경 2020-03-19 623
5070 168계자 여는 날, 2021. 8. 8.해날. 소나기, 풍문처럼 지나다 [1] 옥영경 2021-08-13 623
5069 2019 여름 산마을 책방➂ (2019.8.31~9.1) 갈무리글 옥영경 2019-10-12 624
5068 2020. 2.12.물날. 비 / There is time! 옥영경 2020-03-12 624
5067 2021. 6. 6.해날. 맑음 / 한계령-끝청-중청-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계곡, 20km 옥영경 2021-07-06 6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