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15.불날. 맑음

조회 수 419 추천 수 0 2020.10.10 01:01:00


 

가스계량기가 있는 나무복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복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가운데서

 

말은 그러하다!

 

먼 길을 다녀왔다.

품앗이를 하는 이웃네의 일터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었다.

작년 여름 들머리에도 그곳에서 풀을 뽑고 소나무 가지를 쳤다.

오늘은 주인장과 그네의 친인척 부부가 함께 일했다.

지난해부터 돌격대라며(그렇게 쓰여 있던 마스크를 같이 썼던 때 이후로)

손발을 맞춰 같이 일하던 날이 적지 않았다.

작년에 옥샘이 저희 일을 3일 해줬지요?”

! ...

거기, 저기, 여기, 요기, ...

한 열흘 해서 인부들처럼 지급된 임금을

그 댁 노모 화장실 수리하는 일에 종자돈으로 보냈다.

나머지 공사비는 그 댁 형제들이 알아서 보태라며.

내 애씀을 상대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모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나중에야 말실수(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생각했을라구)이겠다 했지만

야속하였더라.

보람 없는 일에 녹초가 되었을 때 오는 그런 김빠짐.

벌레에 물린 손가락이 더 아팠더랬네.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아주 멀었다.

이런, 게다 차가 좀 이상한 걸! 어딘가 문제다.

속도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오르지 않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가 붙고.

달골 오르막에서는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밟아도 힘을 받지 못하는 거다.

오늘 이군.

학교아저씨로부터 들어온 문자는 예취기가 고장 났다는 소식.

내일은 아무래도 읍내를 다녀와야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806 ‘2020 물꼬 연어의 날; Homecoming Day(6.27~28) 갈무리글 옥영경 2020-08-13 424
5805 2021. 9. 3.쇠날. 가랑비 간간이 다녀가는 / 오늘은 그대의 소식이 힘이었다 옥영경 2021-10-21 424
5804 2021.12. 2.나무날. 맑음 / 우리 모두 늙는다 옥영경 2021-12-31 424
5803 2021.12.13.달날. 맑음 / 잠복소(潛伏所) 옥영경 2022-01-06 424
5802 2022. 2.24.나무날. 맑음 / 러시아, 우크라이나 진격 옥영경 2022-03-24 424
5801 2023. 1. 4.물날. 맑음 / 썰매 옥영경 2023-01-08 424
5800 2023. 7.11.불날. 흐림 / ‘사람이랑 싸우지 말고 문제랑 싸우시라!’ 옥영경 2023-08-02 424
5799 2019.12. 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1-13 425
5798 2020. 8.30.해날. 마른하늘에서 비 촬촬 옥영경 2020-09-17 425
5797 2021. 5.23.해날. 한 번씩 지나가는 먹구름 / 참외장아찌 옥영경 2021-06-22 425
5796 2021.12. 7.불날. 맑음 옥영경 2021-12-31 425
5795 2022. 1. 7.쇠날. 맑음 옥영경 2022-01-12 425
5794 2023. 4.14.쇠날. 얼마쯤의 비 옥영경 2023-05-13 425
5793 2021. 4.26.달날. 맑음, 달 둥실 옥영경 2021-05-26 426
5792 2023. 7. 4.불날. 억수비 옥영경 2023-08-01 426
5791 2023. 7.21.쇠날. 살짝 찌푸린 맑음 옥영경 2023-08-04 426
5790 2020.12.14.달날. 새벽 기온 영하 10도 옥영경 2021-01-10 427
5789 2021.10. 2.흙날. 오늘도 새벽비 / 설악·3 옥영경 2021-12-01 427
5788 2022. 1.29.흙날. 흐리다 맑음 / 대중 경제서 두 권 옥영경 2022-02-24 427
5787 2022. 5. 2.달날. 맑음 옥영경 2022-06-14 42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