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19.흙날. 맑음

조회 수 418 추천 수 0 2020.10.18 23:57:56


 

볕이 좋다

볕이 기울어졌네, 가을이다 하고 얼마쯤의 날이 지났다.

어제는 겨우 맑았는데, 해가 구름을 젖히며 애 먹네 싶더만

오늘은 스르륵 열리는 문처럼 해가 났다.

이불을 널었다.

두터운 가을볕은 늘 아깝다.

 

학교에서는 아래 학교 마당 풀을 예취기로 깎고,

달골에서는 달골대로 기계가 돌아갔다.

뭘 좀 하자 그러면, 날마다 하는 일이 아니라 연장이 애를 먹이고는 한다.

긴 장마는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곰팡이를 내밀고 했듯

오랜만에 쓰는 기계도 뭔가 문제를 일으켰다.

잔디깎이에도 물이 스몄는가, 멈췄다.

예취기가 돌아가며 여기저기 풀을 넘겼다.

하얀샘이 들어와 아침뜨락 이곳저것 예취기를 좀 돌렸다.

깎은 풀을 긁거나 쓰는 일은 내일로 넘긴다.

어제그제 친 밥못은 또 부유물들이 얹혔다.

불날부터 인근 중학교 전교생들 일정이 있으니 달날 오후에 다시 치는 게 좋겠다.

나흘 내리 이어질 일정이니 날마다 저녁답에 걷어야겠다 한다.

 

책방 정리를 오래 못했다.

간간이 눈이 걸리는 책들을 빼내거나(자기계발서 같은 것들) 하는 일이야

밥상에 붙은 밥알 닦듯 당장 치우는 일이 되었지만

올 가을에는 대대적인 책정리를 좀 하리라 일삼았다.

늦은 오후에는 들어온 기락샘과 함께 겹치는 전집들을 꺼냈다.

책정리를 하자면 며칠은 붙어야 할 일이나 당장은 이만큼만.

들린 준한샘이 수돗가에 멧돌로 흐르던 물에 길을 내주었다.

멀리까지 물을 빼야지 하지만 지금 벌일 일은 아니고,

자갈 위로 흐르게 해 한 쪽으로만 빼는 걸로.

 

부엌에서는 장아찌 간장을 끓여

양파와 무를 썰어 유리항아리에 채우고 부었다.

다음주 밥상에 낼 것들이었다.

사람들을 맞는 약간의 긴장이 좋다.

고즈넉한 멧골이라 더욱 그러리라.

이번 일정은 점주샘이 같이 준비하게 되어 더욱 좋다. 

'든든하다'는 그에게 퍽 어울리는 낱말이다.

존재로 타인에게 걱정이 없게 하는 사람, 그가 그렇다. 

그런 그를 내가 안다!

이런 인사를 달가워하지 않을 그이지만 

이제는 이런 인사를 실명으로 하고 싶다.

좋은 말을 굳이 이름을 뒤에 두고 할 게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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