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단다.
낙엽이 눈처럼 날리요,
학교아저씨가 말했다.
바람이 많다.
모든 걸 다 쓸어가겠는, 다가올 겨울의 위세를 보여주는.
11시에야 학교에 내려서서 낮밥을 준비했다.
밥상을 물리고 교무실 데스크탑 앞에서 작업 좀.
손이 시렸다.
역시 안 되겠다 접고,
교무실 문 앞에 놓였던 바구니를 하나 정리하다.
오래된.
계자 때마다 눈에 걸렸으나 계자에 밀리고 그러다 일상에 밀리고.
이번에는 기필코 계자 오기 전 하리라던, 춥기 전 하리라던 일이었다.
오늘이 그날일세.
까꿍방 류옥하다,
이름표가 하나 거기 뒹굴었다.
아이는 뱃속에서도 기면서도 걸음마를 하면서도
서울에서 이 깊은 멧골까지 어미를 따라 다녔다.
아이를 업고 같이 강강술래를 했고,
아이를 안고 한데모임을 했다.
그때 아이들이 단 이름표에는 몇 모둠 누구라고 적혔는데,
갓난쟁이 아이도 그렇게 이름표를 달았더랬다.
그 아이가 자라 20대 중반 청년이 되었고,
키 186에 몸무게가 무려 100에 이른다.
미아방지용 은팔찌도 거기 있었더라.
당시 서울 가회동의 물꼬 서울학교의 전화번호가 적힌.
지나간 시간은 잠이 많다.
어디서고 자다가 그렇게 문득 깨서 우리에게 말을 거는.
그 간격을 보면서 지금의 좌표를 다시 확인케 되는.
나는 잘 있는가!
흙집에 화장실 두 칸을 들이고 긴 날을 틈틈이 작업하다가
문을 달게까지 되었는데,
접이식 문을 대략 세워만 놓고 있었더라니
오늘 그예 달다. 손잡이도 붙여서.
문고리는 목공실에 있는 것으로 되려나...
감을 좀 더 따서 깎고 달았고,
후두둑 다 떨어진 은행알을 학교아저씨는 줍고 있었다.
독서 책을 기획하고 지난 10월 계약을 진행한 출판사에서
벌써 다음 책(코로나19시대 교육을 생각한다, 그런)을 11월에 계약해두자고 했는데,
글빚을 그리 져서 어쩌자고...
이제 겨울 일정들을 준비해야하니 그 건은 11월을 넘기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고
오늘에야 문자를 넣었다.
‘원고 방향이 어느 정도 정리 되신 마음,
12월 초에 뵐 수 있을까요?
올해가 가기 전, 이 건으로도 계약서 갖고 뵙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답문이 그렇게 왔댔네.
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